문재인 대통령이 21일 뉴욕 유엔 총회장에서 기조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뉴욕 유엔 총회장에서 기조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종료되었음을 함께 선언하길 제안한다”고 밝혔다. 4년 연속 유엔에서 ‘종전 선언’ 관련 발언을 한 것이다. “종전 선언을 이뤄낼 때 비핵화의 불가역적 진전과 함께 완전한 평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도 지난주 북한의 순항·탄도미사일 도발과 핵시설 재가동에 대해선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대통령 연설 하루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유엔에서 “북한 핵 개발 계획이 전력 질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이 플루토늄과 고농축 우라늄 생산 작업을 “전속력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다 북은 레이더 탐지가 어려운 순항미사일을 1500㎞까지 날렸고, 유엔 결의 위반인 탄도미사일 성능 개량에도 성공했다. 우리 영토 전역이 북핵 공격에 노출될 위기 상황이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북핵 위협엔 침묵하면서 ‘종전 선언’만 되풀이했다. 청와대는 IAEA의 ‘북핵 질주’ 경고에 대해 “별도 의견이 없다”고 했다. 국민 안전이 위협받는데 ‘의견 없다’는 정부는 세계에서 한국뿐일 것이다. 여당 대표는 “북한의 바람직한 행동에 대한 보상”이라며 개성공단 재개 등을 주장했다. 북이 핵을 늘리고 미사일 쏘는 게 보상받을 행동인가.

종전 선언은 ‘6·25가 끝났다’는 한 줄로 끝날 사안이 아니다. 기존의 정전(停戰) 질서를 변화시키려는 논의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북은 ‘전쟁이 끝났으니 유엔군사령부와 북방한계선(NLL)을 없애라’고 나올 것이다. 주한미군도 걸고 넘어질 가능성이 있다. 한반도 안보 지형을 통째로 뒤흔들 것들이다. 임기가 8개월도 안 남은 정권이 건드릴 문제가 아니다.

문 대통령은 2018년 “종전 선언은 정치적 선언이니 언제든 취소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당시 주한 미국 대사는 “종전 선언은 한번 선언하면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매우 조심해야 한다”며 ‘핵 신고서 제출’ 같은 실질적 비핵화 조치를 조건으로 거론했다. ‘아니면 말고’ 식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70년 된 휴전 상황을 끝내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위기의 근원인 북핵 해결이 먼저다. 북은 지금도 한국을 겨냥한 핵·미사일을 증강하고 있는데 어떻게 “전쟁 끝, 평화 시작”을 선언하자고 하나. 끝까지 쇼할 생각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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