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올해 도쿄 하계 올림픽에 일방적으로 불참했다는 이유로 북한올림픽위원회의 자격을 내년 말까지 정지하는 중징계를 내렸다. 이에 따라 북한은 내년 2월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 참가할 수 없게 됐다. 문재인 정부가 베이징 동계 올림픽을 계기로 모색했던 남북 정상 접촉 등 대북 구상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그러나 청와대는 9일 “한반도 평화를 진전시킬 방안을 계속 찾아보고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조선일보DB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조선일보DB

AP통신에 따르면,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8일(현지 시각) 기자회견을 열어 “북한의 일방적인 도쿄올림픽 불참에 대해 IOC는 이사회 의결을 통해 북한올림픽위원회의 자격을 2022년 말까지 정지한다”고 발표했다. 바흐 위원장은 “북한은 올림픽 헌장에 명시된 올림픽 참가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했다. 올림픽 헌장 4장 27조는 ‘각국 올림픽위원회는 선수들을 파견해 올림픽에 참가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북한은 IOC에서 자격이 정지된 내년 말까지 IOC로부터 어떠한 재정적 지원도 받을 수 없다. 또한 서방의 경제 제재로 지급이 보류된 북한의 과거 올림픽 출전 배당금도 몰수된다.

다만 IOC는 북한이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 국가 자격으로 참가하지 못하도록 금지했을 뿐 북한 선수들이 개인 자격으로 참가할 수 있는 길을 열어뒀다고 밝혔다. 바흐 위원장은 “북한에 대한 징계 기간도 추후 논의할 여지는 있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는 “IOC 징계를 받았던 러시아가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개인 자격으로 선수들을 내보낸 것처럼 북한이 할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앞서 북한은 지난 3월 말 코로나 사태로부터 선수들을 보호하겠다는 이유를 대며 도쿄올림픽에 불참하겠다고 결정했다. 이에 대해 IOC는 출전을 거부하면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북한 측에 알렸다. 또한 IOC는 백신을 북한 선수단에 제공하겠다며 참가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북한은 끝내 출전하지 않았다. 북한의 하계 올림픽 불참은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처음이다. IOC 206개 회원국 중 도쿄올림픽에 불참한 회원국은 북한뿐이었다. 로이터통신은 “북한의 일방적인 ‘노쇼’를 IOC가 제재했다”고 전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사실상 북한이 내년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하게 중징계를 하면서, 여권은 크게 당황한 분위기다. 최근 북한이 한미 연합훈련 등에 반발하면서 남북 관계가 다시 경색되긴 했지만, 근래까지 남북 정상 간 서한을 주고받으며 대화 재개를 모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남·북·미가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베이징올림픽을 최대 이벤트로 여겨온 상황에서, IOC의 이 같은 결정은 문재인 정부 구상에 큰 변수가 됐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IOC 발표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별도로 논평할 사안은 없다”면서도 “다만 정부는 남북 정상이 합의한 바와 같이 베이징 올림픽 등 다양한 계기를 통해서 남북한 스포츠 교류, 한반도 평화를 진전시킬 방안을 계속 찾아보고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의 재심 청구 가능성에 대해서도 “IOC가 취한 조치에 대해서 이후에 어떠한 절차가 가능한지 알아보겠다”고도 했다. 정부 차원에서 IOC 결정을 뒤집을 수 있는 외교적 노력을 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여권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의 임기 말 남북 관계 개선 구상에 차질이 생길 수 밖에 없다”며 “우리가 생각했던 ‘평창 어게인’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2018년 평창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방한한 김여정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김정은 국무위원장 친서를 직접 전달했고, 이는 그해 4월 남북정상회담, 6월 북미정상회담 등으로 이어졌다.

이 같은 그림을 염두에 두고 여권은 내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북한과의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는 중이었다. 앞서 청와대는 남북 간 정상회담 개최 논의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며 여러 차례 부인했지만 여권 핵심 관계자들은 “문 대통령이 임기가 끝나기 전 성과를 내고 싶어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오는 17일 남북 유엔 동시가입 30주년 맞아 문 대통령이 직접 메시지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그만큼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적이다. 실제 정부는 최대한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지난달 실시한 한미 연합훈련 규모도 축소했고, 이에 따른 북한의 반발에도 “상황을 주시하겠다”는 등의 원론적인 입장만 밝힌 바 있다. 한미 연합훈련을 계기로 13개월 만에 복원된 남북통신연락선이 다시 끊긴 것에 대해서도 “정상화위해 노력하겠다”며 북한을 달랬다. 통일부는 북한이 응답하지 않지만 매일 연락선을 통해 통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IOC 결정대로라면 문재인 정부의 이러한 노력이 성과를 내기 힘든 상황이다.

청와대와 정부는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아직까지 북한 불참이 결론났다고 보면 안된다”며 “개최국인 중국 입장에서도 북한이 참여해야 또 하나의 이벤트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움직일 것이고, 미국도 같은 입장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이 73주년 열병식 규모를 축소해 개최한 것을 놓고도 “북한도 대화 가능성을 아예 닫은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문 대통령이 14~15일 방한하는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만나 이 문제를 논의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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