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현익 세종연구소 외교전략연구실장이 11일 국회에서 열린 ‘개성공단 폐쇄 3년 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외교전략연구실장이 11일 국회에서 열린 ‘개성공단 폐쇄 3년 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다.

홍현익 국립외교원장 내정자가 라디오 방송에서 “본래 한미 연합훈련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본다”고 했다. 외교관 양성을 담당하는 외교부 산하 정책 싱크탱크 수장이 될 사람이 북한의 남침에 대비해 혈맹인 미국과 함께 하는 국가 안보의 핵심 훈련 무용론(無用論)을 제기한 것이다. “북한의 경제력이 남한의 53분의 1로 축소됐고, 군사비도 우리가 10배 이상 쓴 지 10년이 지났다”면서 꺼낸 말이다. 경제력과 군사비 규모가 북한을 압도하니 군사적 위협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북은 우리에게 없는 핵을 갖고 있다. 수소탄 실험까지 마쳤고 보유 핵탄두가 수십 개에서 100개라는 분석까지 나온다. 그런데도 우리 재래식 군비가 앞서니 북의 위협에 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상식 밖의 말이 국립외교원장 내정자 입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또 16일부터 예정된 이번 훈련에 대해 “북한 진격 훈련 등은 안 하고 규모도 줄여서 그야말로 방어 훈련만 한다는 걸 북한에 간접적으로라도 밝혀야 한다”고 했다. 적의 위협에 대한 방어 훈련 내용을 적에게 알려주자는 것이다. 이적 행위나 다름없는 발상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 의원 70여 명은 한미 연합훈련 연기를 요구하는 집단 성명을 냈다. 북한 김여정이 “북남 관계의 앞길을 더욱 흐리게 하는 재미없는 전주곡이 될 것”이라며 취소를 요구하자마자 연판장을 돌려 의견을 모았다. 그 사이 통일부는 “한미 훈련이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는 계기가 돼서는 안 된다”, 국정원은 “한미가 연합훈련을 중단하면 북이 남북 관계에 상응 조치를 할 의향이 있다”며 가세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국방장관에게 “여러 가지를 고려해 미국 측과 신중하게 협의하라”고 했다.

미·북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컴퓨터 키보드 게임’으로 전락한 한미 연합훈련은 이번에 더욱 축소된 형태로 치러진다고 한다. 한미 양측 모두 훈련 참여 병력을 줄이기로 했고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위한 미래연합사령부의 완전운용 능력 검증도 못하게 됐다고 한다. 군에서는 “코로나 19 확산 사태로 인한 것”이라고 변명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한미 훈련을 위해 한국군 55만명분 백신까지 제공했고 현재 장병 93% 이상이 1차 접종을 완료했다. 훈련 축소는 김여정의 하명을 받들기 위해 당·정·청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결과다. 이 나라의 국군통수권은 도대체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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