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美) 뉴욕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과 한국 정부를 겨냥한 비판 성명을 잇따라 냈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미 시사주간지 타임 인터뷰에서 북한 김정은을 “매우 솔직하다”고 하자 이를 ‘문 대통령의 망상(delusion)’이라고 했고, 대북전단금지법이 “국제적으로 허용되는 수준”이라고 발표한 우리 정부 입장에 대해 “터무니 없는 변명”이라고 했다.

휴먼라이츠워치(HRW)의 필 로버트슨 아시아 부국장. /연합뉴스
 
휴먼라이츠워치(HRW)의 필 로버트슨 아시아 부국장. /연합뉴스

이를 작성한 필 로버트슨 아시아 부국장은 14일(현지 시각) 본지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은 인권은 누구로부터 빼앗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정치적인 이유로 억압할 수도 없다는 가치임을 자각해야 한다”며 “그럼에도 이 정권은 인권의 가치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다”고 했다. 전세계 약 40개 국가에 지부를 두고 있는 HRW는 1997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과 함께 가장 권위 있는 국제인권단체로 평가 받는다. 다음은 일문일답.

-외국 단체가 한국 정부에 이렇게 강도 높은 비판을 한 것은 이례적이다.

“(북한의 실상을 담은) 대북전단 살포는 ‘평화적 표현’ 활동의 핵심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이 학생 운동을 할 때 정부가 민주주의의 가치를 담은 전단 배포를 금지했다면, 그들이 가만히 있었을까. 아마도 졸도(apoplectic)할 정도로 화를 냈을 것이다. 그런 그와 정부 인사들이 권력을 잡은 뒤 북한 실상을 알리는 전단 배포를 봉쇄해버린 건 위선의 극치다. 인권변호사 출신인 문 대통령이 이런 법(대북전단금지법)을 서둘러 통과시킨 것은 북한 정권에 눈치를 본 것이다. 김정은 남매가 얼마나 남한 정부를 쉽게 조종할 수 있는 지 생각하면서 평양서 웃고 있을 것이다.”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9일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서 타임(TIME)지 표지 촬영과 화상인터뷰를 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타임지 표지(왼쪽)와 인터넷판 기사. 이에 대해 휴먼라이츠워치는 '망상'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문 대통령 발언을 비판했다. /연합뉴스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9일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서 타임(TIME)지 표지 촬영과 화상인터뷰를 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타임지 표지(왼쪽)와 인터넷판 기사. 이에 대해 휴먼라이츠워치는 '망상'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문 대통령 발언을 비판했다. /연합뉴스

-그렇더라도 ‘망상’ ‘터무니없는 변명과 핑계’ 등은 수위가 세다.

“우리는 전직 인권변호사가 세계 최악의 인권 유린 정권인 북한을 달래기 위해, ‘인권 유린법’으로 한국 국민들의 인권을 억누르는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 어이없고 우스꽝스럽지 않다면 이 상황을 뭐라고 표현해야 하는가? 남한의 지도자(문 대통령)는 김정은과 그의 여동생(김여정)이 요구하는 것을 모두 이행한다면 북한이 협상 테이블로 돌아올 것이라고 착각했다. 되려 북한은 문 대통령이 거래를 시도하기 위해 자국민들의 권리까지 침해할 정도로 절박하다고 보고 문 대통령과 한국 정부를 더 이상 존경하지 않게 됐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 인권을 외면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문재인 정부는 인권을 문제 삼으면 북한이 대화에 응하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한국 정부와는 대화를 끊은 지 오래다. 김정은은 자신이 무슨 행위를 하면서 문 대통령을 압박하더라도 한국은 이를 받아들일 것이란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행정부는 북한과의 첫 대화부터 인권 문제를 포함한 모든 이슈들이 논의될 수 있고, 또 논의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어야 했다. 정권 초 어느 정도의 협상이 진행되고 있었을 때부터 인권 문제를 테이블 위에 올렸었다면 지금처럼 인권 문제가 ‘성역’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문 정부는 항상 북한의 요구를 계속 들어주기만 했고 평양의 지도부는 한국 정부에 결코 양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 인권 문제가 대북(對北) 정책의 ‘최우선’이라고 했다. 무슨 뜻인가?

“미·북간 어떤 대화와 협상에서도 인권 문제가 주요 의제로 포함돼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 정부의 ‘실권’은 국민의 40%가 영양실조와 굶주림에 허덕이면서 생산한 재원을 투입해 핵 무기를 생산함으로써 나온다. 이런 일이 계속될 순 없다. 그간 미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 전까지는 항상 인권을 미 외교 정책의 중심에 둬왔다. (트럼프 이후로) 미국이 원래의 기준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의회에서도 인권 문제는 초당적 지지를 받고 있다”

-당신의 논평이 주목 받으면서, 이를 보도한 기사에 ‘우파와 결탁한 단체’ ‘수구 단체’ 등의 악성 댓글이 잇따라 달리고 있다.

“HRW이 한반도에서 활동해온 그간의 역사를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우리는 1988년 남한의 독재 정권(전두환 정권)의 인권 탄압 상황을 자세히 보고서로 출간했고, 1990년대에도 꾸준히 열악한 노동 환경 등을 지적하는 글을 발표해왔다. 솔직히 한국에서 벌어지는 노골적인 ‘인권의 정치화’에 대해 진절머리가 난다. 어떤 정치 세력을 대변하느냐에 따라 ‘우파’ 혹은 ‘좌파’로 분류돼 비난 받는 그런 상황 말이다. 한국 정치에서 인권에 대한 편협하고 교양 없는 대우는 이젠 종식돼야 한다.”

-북한이 스스로 인권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고 보나?

“절대 그럴 리 없다. 북한 정부의 근본 자체가 북한 주민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고 김정은 1인 체제에 대한 어떠한 도전도 막는 체계적이고 만연한 ‘인권 침해’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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