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한국식 웨딩 영상을 찍은 이들을 `반국가적 범죄자`로 규정하며 재판에 넘기는 영상이 공개됐다. 앞서 국가정보원은 북한 당국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한국식 말투와 옷차림을 집중적으로 단속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12일 월간조선이 보도한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로부터 받은 20분가량의 영상에 따르면 `조선중앙통신사 콤퓨터강연선전처`는 “우리 인민의 고상한 미풍양속과 사회주의 생활양식에 배치되는 이색적인 결혼식 녹화 편집물 제작 행위를 철저히 배격하자”는 내용의 선전물을 제작했다.

지난달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해당 영상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제국주의의 사상 문화적 침투 책동을 짓부수고 우리의 사회주의 문화와 생활양식을 철저히 고수해야 한다”는 지시문으로 시작했다.

영상은 “최근 일부 사상적으로 불건전한 청춘 남녀들과 돈벌이에 환장한 집단이 결혼식을 사회주의에 전혀 맞지 않게 변태적으로 변형하다 못해 편집물로 만들어 유포했다”며 “건전한 사상 의식을 흐려놓고 고상한 미풍양속을 어지럽히는 엄중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전했다.

◇시스루 웨딩드레스 입었다고 “머리통이 썩었다”

12일 월간조선이 보도한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로부터 받은'조선중앙통신사 콤퓨터강연선전처' 영상. 독일 브랜드 '아디다스' 티셔츠를 입은 여성이 등장한다. /월간조선
 
12일 월간조선이 보도한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로부터 받은'조선중앙통신사 콤퓨터강연선전처' 영상. 독일 브랜드 '아디다스' 티셔츠를 입은 여성이 등장한다. /월간조선

선전처는 “안일하고 퇴폐적인 생활 풍조만을 고취시킨다”며 예시 영상을 보여줬다. 독일의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 티셔츠를 입은 여성의 모습을 두고 “저들의 차림새를 봐서는 도무지 공화국 국민인지 가늠하기 힘든 정도인데, 이들의 짓거리를 지켜본 숱한 사람들 속에 눈이 바로 박힌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단 말이냐”고 한탄했다. 또 유람선에서 와인을 마시는 예비부부를 향해서는 “불건전하고 나태한 생활을 흉내 내느라 가련한 저 신랑신부들이 하나같이 대학까지 나온 청년들”이라며 “슬프게도 당에서 하지 말라는 짓만 해대고 있으니 과연 저런 인간들이 시련의 시기에 당의 은덕을 저버리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공원이나 바닷가에서 포옹하는 남녀의 모습에 대해서는 “때와 장소도 가리지 않고 서로 끌어안는 모습이 차마 보지 못할 지경”이라며 " 어떻게 수많은 사람이 모여드는 대중 장소에서 아무런 부끄럼이나 거리낌도 없이 노골적으로 추접하게 놀아댈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혼 영상에서는 보트를 타고 북한의 예비 부부들이 자연스럽게 와인을 즐기는 모습도 등장하지만 북한당국은 반민족,반당적 행위라고 비판하고있다./월간조선
 
결혼 영상에서는 보트를 타고 북한의 예비 부부들이 자연스럽게 와인을 즐기는 모습도 등장하지만 북한당국은 반민족,반당적 행위라고 비판하고있다./월간조선

심지어 “신랑 김지훈과 신부 이지향의 결혼 녹화 편집물”이라며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는 사례도 있었다. 선전처는 “처녀의 손목에 4개에 달하는 금속 팔찌가 끼워져 있다”며 “해외 동포 여성이거나 아시아계 외국인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고 봤다. 미니스커트나 망사 웨딩드레스를 입은 사진에 대해서는 “머리통이 썩을 대로 썩었다”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이 부부와 같은 젊은이들, 무자비하게 짓뭉개버릴 박멸 대상”

12일 월간조선이 보도한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로부터 받은'조선중앙통신사 콤퓨터강연선전처' 영상. 실명까지 공개된 해당 여성이 팔찌 4개를 찼다고 지적한다. /월간조선
 
12일 월간조선이 보도한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로부터 받은'조선중앙통신사 콤퓨터강연선전처' 영상. 실명까지 공개된 해당 여성이 팔찌 4개를 찼다고 지적한다. /월간조선

불법 유통된 한국 영상물을 원인으로 의심하는 발언도 나온다. 선전처는 “남들이 볼 테면 보라 하는 심정의 신랑과 신부들에게 묻건대 당신들은 어디서 무엇을 보고 이러한 동작을 스스럼없이 흉내 내고 있느냐”며 “혹시 남몰래 불순 선전 시청물을 본 것 아니냐”고 했다.

선전처는 “이 부부와 같은 영상물을 제작하는 젊은이들은 썩어빠진 자본주의 사상문화를 끌어들인 혁명의 원수이자 무자비하게 짓뭉개버릴 박멸 대상”이라며 “추격전, 수색전, 소탕전을 맹렬히 벌여 밑뿌리째까지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투쟁 분위기를 고조시켜 우리 사회를 좀먹는 불건전하고 이색적인 행위를 하고서는 감히 얼굴을 들고 다닐 수도 없고 배겨낼 수도 없게 만들어야 한다”며 “알아들을 만큼 교양했음에도 이색적인 생활방식을 추구하는 자들은 결국 우리와 딴 길을 가겠다는 것으로 봐야 한다. 법적으로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상 뒷부분에는 실제로 다수의 남녀가 죽을죄를 진 것처럼 고개를 숙인 채 재판을 받는 모습도 담겼다.

지난해 12월 북한에서 제정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에는 `남조선식으로 말하거나 남조선 창법으로 노래하는 자는 노동단련형 또는 2년까지의 노동교화형에 처한다`는 조항이 들어갔다. 또 남측 영상물 유포자는 사형에 처하고 시청자는 최대 징역 15년에 처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