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유엔에 보낸 대북전단금지법 관련 서한을 두고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변명”이라며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이 북한 정권을 옹호하기 위해 자국민의 인권을 탄압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휴먼라이츠워치의 필 로버트슨 아시아 담당 부국장은 12일 미국의소리(VOA)에 보낸 공식 성명에서 “한국 정부의 반응은 솔직히 터무니없다”며 “문재인 행정부는 한국인의 기본 인권을 명백히 침해하는 법에 대한 철저한 검토를 피하고자 할 수 있는 말은 뭐든지 하면서 그때그때 핑곗거리를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전직 인권변호사가 이끄는 한국 정부가 세계 최악의 인권 탄압 정권 중 하나인 북한 정부를 옹호하기 위해 자국민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은 모순적이고도 슬픈 일”이라며 “대북전단법처럼 특정 행동을 전면 금지하는 것은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어떤 타당한 제약의 범위도 훨씬 넘어서게 된다. 이 법은 북한 주민들에게 그들의 권리에 대해 알려주려는 외부 단체들을 맹렬히 비난해온 김정은과 그의 여동생의 분노를 달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통과된,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것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로버트슨 부국장은 “한국 정부가 국제 인권 기준을 준수하는데 진지했다면 그렇게 광범위한 금지책을 통과시키거나 집행하기보다 현행법을 활용해 사례별·사건별 기준으로 규제하는 접근법을 취했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2021년 3월 6일 북한 청년들이 탈북민들의 대북전단 살포를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성토하는 군중 집회를 열고 있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2021년 3월 6일 북한 청년들이 탈북민들의 대북전단 살포를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성토하는 군중 집회를 열고 있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유엔 특별보고관들은 앞서 지난 4월 19일 한국 정부에 서한을 보내 대북전단금지법이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 19조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한국 정부 입장을 요청한 바 있다.

한국 정부는 이에 지난 8일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에 서한을 보내 대북전단금지법은 “접경 지역 주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한만 가하고 있고, 표현의 ‘수단’을 최소한으로 제한하는 것이지 표현의 자유와 관련한 본질적인 ‘내용’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모든 전단 살포를 제한하지 않고 주민의 삶에 위협을 끼칠 수 있는 경우만 제한”하며, 따라서 “법이 광범위하게 해석돼 부적절한 처벌로 이어진다는 우려는 근거가 없다”는 설명이었다.

북한의 억압적 체제와 인권 유린, 중국 내 탈북민 강제북송 실태 등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해 온 휴먼라이츠워치는 최근 들어 한국 정부가 이런 문제들을 외면하고 있다며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로버트슨 부국장은 지난달 25일 VOA에 보낸 성명에서도 “김정은은 북한 정부를 이끌기보다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반인륜 범죄에 대한 재판을 받아야 한다”며 “하지만 어쩐 일인지 한국의 문 대통령은 김정은을 무슨 가치 있는 지도자로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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