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이산가족 방문단이 북한으로 떠난 18일 오전, 남북 가족들은 이별의 아픔에 몸서리쳤다. 50년 만에 만나 3박4일만을 함께 지낸 이산가족들은 북으로 향하는 항공기에 오르기 직전까지도 살아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눈물을 흘렸다.

○…북측 임재혁(66)씨는 치매를 앓아 휠체어에 의지한 아버지 임휘경(90)씨에게 “이제 가요. 다시 올게요”라고 말한 뒤 큰 절을 올렸지만 아버지 임씨는 말없이 아들을 바라봐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또 북의 리래성(68)씨와 여동생 이지연(1983년 KBS 이산가족 찾기 진행 아나운서·53)씨 가족은 버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말도 들리지 않아 입술 모양을 보며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헤어지는 순간까지 대화를 하려는 남측 가족들은 휴대전화를 북측 가족에게 전달해 버스 안에서 통화하는 모습도 보였다. 북의 김규렬씨는 안내원의 도움으로 가족들에게 ‘부모님 모시고 건강하게 내 몫까지 다해달라. 오래살면 또 만나지 않겠는가’라고 전했다. 또 일부 가족들은 승용차로 공항까지 추적하듯 쫓아와 그간 찍은 사진을 전달하기도 했다.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 하는 남측 가족들은 워커힐호텔과 김포공항에 “안녕히 가세요” 등의 글이 적힌 팻말을 들고 나왔다.

황주태(68·북)씨 가족은 공항 2층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너무 그리운 황주태 작은 아버님, 안녕히 가세요.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라고 쓴 팻말을 들고 나왔다. 조카인 황경선(충북 보은)씨는 “모조지를 구하지 못해 부랴부랴 달력을 오려서 뒷면에다 적어왔다”고 말했다.

○…시인 오영재씨는 공항 출발 전 “오늘의 리별은 리별이 아닙니다. 북과 남이 힘을 합쳐 기어이 통일의 날을 앞당겨 리별이 없도록 합시다”라는 글을 가족들에게 전하기도 했다.

○…공항에는 이산가족 상봉 명단에서 제외된 이산가족들이 몰려들어 쪽지를 건네려고 안간힘을 썼다. 홍정애(51)씨는 “해방 직후 헤어진 9남매의 생사를 확인하고 싶다”며 북측 방문단의 손에 인적 사항과 나이 등을 적어 접은 종이를 방문단 3~4명에게 전달했다. 또 함남 신흥군에 동생 5명이 살고 있다는 실향민 유선금(유선금·80)씨는 “1946년 남편과 함께 월남해 친정식구들과 헤어졌다”며 “다음에는 꼭 고향에 가고싶다”며 울먹였다.

/정병선기자 bschung@chosun.com

/송동훈기자 dhshi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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