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행정부가 석 달여 간의 대북 정책 리뷰를 완료하고, 트럼프 행정부가 한때 추진했던 ‘일괄타결’이나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와는 ‘제3의 길’을 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구체적 내용은 공개되지 않아 결국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를 막을 뾰족한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젠 사키 미국 백악관 대변인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대통령의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방문을 위해 이동하는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 기내에서 취재진 브리핑을 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젠 사키 미국 백악관 대변인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대통령의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방문을 위해 이동하는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 기내에서 취재진 브리핑을 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30일(현지 시각)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로 가는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 안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대북 정책 리뷰가 완료됐다고 확인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101일 만에 대북 정책 리뷰를 마쳤다고 밝힌 것이다. 사키 대변인은 “우리의 목표는 여전히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며 “우리 정책은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일괄 타결)’을 이루는 데 초점을 두지 않고 ‘전략적 인내’에도 의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 “우리 정책은 미국, 동맹, 주둔군의 안보를 증진시키는 실질적 진전을 만들기 위한 북한과의 외교에 열려 있고 그런 외교를 탐색하려는 잘 조정된(calibrated) 실용적 접근법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가 만난 바이든 행정부의 한 당국자는 ‘잘 조정된 접근법’이 “비핵화라는 궁극적 목표를 갖고 (북한의) 특정한 조치에 대해 제재 해제를 할 준비가 된 신중하고 조율된 외교적 접근법”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북한의 완전한 핵 포기와 제재 완전 해제를 맞바꾸는 ‘그랜드 바겐’과 북한의 선(先) 비핵화 조치를 전제로 협상에 나서겠다는 ‘전략적 인내’의 중간인 ‘단계적 해법’을 택하겠다는 취지다. 결국 선결 조건 없이 북한과 협상하면서 북한이 핵 동결(凍結)이나 일부 폐기에 동의하면 미국도 상응 조치를 해주며 비핵화까지 나아가려는 전략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핵보유국' 선언을 하고 대등한 입장의 핵군축을 요구해 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런 협상에 응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 북한은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 리뷰 완료 사실이 공개된 지 만 하루 만인 1일 미국이 “시대적으로 낡고 뒤떨어진 정책”을 펼치려 한다며 대미 공세를 재개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과 마크 밀리 합참의장으로부터 대북 정책 리뷰 완료에 대한 보고를 받은 것은 지난주였다고 미 언론은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8일 연방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북핵을 “심각한 위협”으로 규정하고 “외교와 엄중한 억지”로 해결해 나가겠다고 했는데, 대북 정책 리뷰 내용을 반영한 연설이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을 특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연설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책임감 있는 어떤 미국 대통령도 기본적 인권침해에 침묵할 수 없다”고 했다. 북한의 인권침해 문제도 계속 제기하겠다는 뜻으로 트럼프 행정부가 사용했던 ‘외교’와 ‘억지’에 ‘인권’을 더한 것이다.

 

이에 대한 북한의 반발에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일 abc 방송 ‘디스위크’에 출연해 “우리 대북 정책은 적대에 목적이 있지 않고 해결에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미국의 적대시 정책'을 핑계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 같은 도발을 재개하는 것을 미리 차단하려는 발언이었다. 설리번 보좌관은 “궁극적 목적은 한반도의 비핵화”라며 “전부냐 전무냐 하는 것보다 잘 조정된, 실용적인 신중한 접근법이 이란, 북한 핵 프로그램이 야기하는 도전을 감축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제일 높인다고 믿는다”고 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이전 정책들을 ‘절충’하는 것 외에 새로운 점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바이든 행정부의 고위 당국자는 워싱턴포스트에 “이것(새 대북 정책)이 통할 때까지 제재 압박을 유지할 것”이라면서도 “우리 접근법은 싱가포르 합의와 이전 합의들 위에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김정은과 했던 ‘톱다운(Top down·하향식) 외교’는 계승하지 않겠지만, 싱가포르 합의문 자체를 폐기하지는 않겠다는 얘기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바이든 행정부 관료들은 전임 행정부들의 전례와 다른 새 길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용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은 제한돼 있기 때문에 전임 행정부와의 연속성이 생각보다 클 것”이라고 했다.

싱가포르 합의엔 미·북 양국이 평화 체제 구축에 노력하고, 북한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대북 정책 리뷰 완료 사실을 알리며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가 목표라고 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지난 3월 한·일 방문 때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란 표현을 썼던 것과는 차이가 있다. 북한이 원하는 ‘한반도 비핵화’란 표현을 써주면서 협상에 응하라는 신호를 북한에 보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수미 테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실질적으로 가까운 미래에 이것이 작동할 가능성이 낮다”고 말했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김정은은 미국이 선제적 제재 해제를 하지 않는 이상 미국과 만나지 않겠다고 했는데 바이든이 그런 일을 할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이 오는 21일 열릴 한·미 정상회담을 기다리지 않고, 지난달 16일 열린 미·일 정상회담의 결과만 토대로 대북 정책을 확정 지은 것도 미국의 외교에서 한반도가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었다는 신호로 여겨진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바이든 대통령이 2주 전 스가 (일본) 총리와 만났을 때 그들은 (대북 정책을) 논의했다”며 “일본의 입력(input)과 우리의 예전 접근법들이 모두 역할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사키 대변인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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