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서부전선에 위치한 창린도 방어대를 시찰했다고 2019년 11월 25일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photo 조선중앙TV 영상 캡처·뉴시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서부전선에 위치한 창린도 방어대를 시찰했다고 2019년 11월 25일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photo 조선중앙TV 영상 캡처·뉴시스

북한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창린도’에 240㎜ 방사포를 배치했다는 사실이 지난 3월 23일 알려지면서 북의 ‘서해 요새화’ 작업이 한층 강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창린도는 황해도 옹진반도 서쪽에 있는 섬으로, 여기서 가장 가까운 우리 섬은 백령도 아래 소청도다. 창린도와 소청도는 직선거리로 32㎞, 백령도는 40㎞, 대연평도는 35㎞ 떨어져 있다. 북한이 창린도에 설치한 240㎜ 방사포의 사거리는 통상 60여㎞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창린도는 2019년 11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부대를 찾아 해안포 사격을 지시한 곳이다. 당시 군은 북의 해안포 사격을 두고 “9·19 군사합의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이번 방사포 배치에 대해선 “군사합의 위반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부승찬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3월 23일 국방부 브리핑에서 “특정화기 배치만으로 군사합의를 위반했다거나 무력화했다고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 “실제로 9·19 군사합의 내용에도 포함돼 있지 않은 부분”이라고 했다. 김준락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우리 군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관련 정황을 예의주시하면서 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서해 요새화’ 작업은 김정은 집권 이후 강화되어 왔다. 북한이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를 포격한 것도 김정은이 김정일의 후계자로 활동하던 때였다. 김정은은 연평도 포격 도발을 자신의 대표적 치적으로 내세운 바 있다. 연평도 포격전 이후 북은 꾸준히 서해 NLL 인근 섬에 군사시설을 새로 건설하거나 증축해왔다.

북한은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첨예했던 2015년 연평도 인근의 갈도와 아리도에 화포와 레이더를 설치했다. 갈도는 연평도에서 4.5㎞ 떨어진 섬으로, 사실상 마주 보고 있는 것과 다름없는 곳이다. 북한은 이곳에 122㎜ 방사포 6문을 설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갈도 역시 창린도와 마찬가지로 방사포가 설치될 당시 김정은이 직접 해당 부대를 방문해 시찰하기도 했다.

북은 같은 해 갈도에서 20㎞ 떨어진 무인도 아리도에 레이더와 50여명의 병력을 배치했다. 아리도는 연평도에서 서북쪽으로 12㎞ 거리다. 이러한 북의 서해 ‘요새화’ 작업이 이어지자 2016년 6월 우리 군은 갈도와 아리도를 통한 북의 도발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NLL 인근 지역의 감시 태세를 강화했다.

이어 북은 2017년 5월 우리 섬 말도에서 약 9㎞ 떨어진 함박도에 레이더와 1개 소대 병력을 배치했다. 함박도는 한동안 무인도였던 섬으로, 북은 2017년 5월 초부터 이곳에 진지 공사를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군이 함박도에 설치한 레이더는 주로 항해용으로 알려진 일제(日製) 상용 ‘후루노(FURUNO)레이더’다. 기종마다 차이는 있지만 이 레이더의 탐지거리는 약 40㎞ 안팎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이 함박도에 군사시설을 배치한 사실은 2년여 뒤인 2019년 7월에야 세상에 알려졌다. 함박도 논란이 거세지자 당시 합동참모본부는 2019년 10월 국회 국방위원회의 합동참모본부 국정감사에서 “함박도에서 북한군의 움직임은 2017년 5월 4일 최초 포착됐다” “북한군의 움직임은 2017년 5월 4일과 5월 6일에 파악됐고, 이를 5월 8일에 종합해서 보고했다”고 밝혔다. 2019년 10월 21일 국회 국방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서 당시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은 북한의 NLL 인근 5개 섬의 군사시설 무장 현황 자료를 공개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하 의원은 “함박도뿐 아니라 (북한 관할) 서해 무인도 5곳이 전엔 방어기지였다가, 2015년 공격형 기지로 바뀌었다”며 “갈도에는 방사포 4문, 장재도에는 6문, 무도에 6문 등 총 16문의 방사포가 있다. 동시에 288발이 날아간다”고 했다. 그러자 정경두 당시 국방부 장관은 “그러한 자료는 적을 이롭게 하는 자료라고 누누이 말씀드린다”며 맞섰다. 우리 군의 대북 정보 능력을 공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취지였다.

서해 NLL 인근 북한군 주둔 도서(島嶼) 현황. 암석지대로 된 일부 섬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섬에 북한군이 주둔하고 있다.

서해 NLL 인근 북한군 주둔 도서(島嶼) 현황. 암석지대로 된 일부 섬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섬에 북한군이 주둔하고 있다.

NLL 일대 도서 대부분에 북한군 주둔

당시 국방부는 북한의 함박도 레이더 설치를 두고 “중국 불법 어선 단속용”이라고 설명해 비판을 받았다. 북한이 무인도에 병력을 보내 진지 공사, 태양광 시설과 레이더를 설치한 이유가 ‘중국에서 불법으로 해역을 넘어와 조업을 하는 배들을 단속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군사용 전자장비 기술이 부족한 북한은 해군 고속정에도 ‘후루노레이더’를 운용하고 있다. 레이더 자체가 군사용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북한이 이를 군사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 함박도의 레이더 설치가 ‘포 관측소’ 역할을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포를 쐈으면 어디에 맞았는지 알아야 하는데, 함박도의 레이더 시설이 이러한 관측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항해용 레이더 역시 인근 바다에 떠 있는 군함 위치 등은 파악이 가능하기 때문에, 포 공격 전후로 사용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북한은 현재 서해 NLL 일대 도서 대부분에 북한군을 주둔시키고 있다. 국방부에 따르면 북한의 월래도, 육도, 마합도, 기린도, 창린도, 어화도, 순위도, 비압도, 무도, 갈도, 장재도, 계도, 소수압도, 대수압도, 아리도, 용매도, 함박도 등 총 17곳의 섬에 북한군이 주둔하고 있다. 암석지대로 이뤄진 섬인 하린도, 웅도, 석도를 제외하고 서해 NLL 일대 대부분의 섬에 북한군이 주둔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북의 서해 NLL 일대 군사시설 증강에 대해 “섬에 배치한 북한 군사 시설의 경우 선제 기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며 “선제 기습이 특징인 북한군의 특성상 언제든 위협이 될 수 있는 소지가 있다”고 분석한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선임분석관은 “북이 군사 무기를 전방에 배치하는 행태는 군사적 긴장도를 고조시키기 위한 것”이라며 “창린도와 갈도 같은 작은 섬에서 포를 이용해 공격하면 금방 초토화 반격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북한도 알고 있다. 때문에 북의 NLL 일대 군사력 증강은 ‘언제든 기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의 NLL 무력화 야욕

북한의 NLL 일대 군사화는 NLL 자체를 ‘무력(無力)화’하려는 야욕과도 맞닿는다. 북한은 1970년대부터 NLL의 존재와 의미를 부정해왔다. 북은 지난해 10월 서해 연평도 인근에서 실종된 공무원 시신 수색 당시 우리 군과 해양경찰청이 자신들의 수역을 침범했다며 “남측의 영해 침범을 절대로 간과할 수 없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여기서 북한이 자신들의 ‘영해’라고 주장한 기준선이 이른바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이다.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은 북한이 NLL을 부정하며 자신들이 임의로 설정한 서해 분계선이다.

북한은 1973년 10~11월 사이 총 43회에 걸쳐 서해 NLL을 의도적으로 침범하는 ‘서해 사태’를 일으킨 바 있다. 1953년 정전협정 이후 NLL에 대해 한동안 이렇다 할 이의를 제기한 적 없던 북한이 돌연 ‘서해 NLL은 비법적인 선’이라고 주장하며 도발한 것이다. 이 서해 사태에 관해 논의하기 위해 1973년 12월 두 차례에 걸쳐 남북 간 ‘군사정전위원회’가 열렸다. 이때 북한은 처음으로 “황해도와 경기도의 도계선 이북 수역은 우리 연해”라고 주장하면서 “서해 5대 도서에 출입하는 선박에 대한 사전허가”를 요구했다. 또 북한은 1977년 7월 ‘중간선에 기초한 200해리 경제수역’을 발표하면서 그해 8월 이 수역의 경계선이 해상 군사경계선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이 북한이 주장하는 ‘해상 군사분계선’의 근거다. 이는 황해도와 경기도를 구분 짓는 도계선 이북의 바다가 전부 북한 것이므로, 서해 5도에 출입하는 대한민국 선박은 북한에 허가를 받으라는 주장이었다. 여기서 북한이 언급한 ‘황해도와 경기도의 도계선 이북’은 NLL보다 훨씬 남쪽에 설정된 구역이다. 우리 군과 유엔사는 이를 ‘북측 주장 해상 군사분계선’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NLL의 설정은 1953년 체결된 정전협정이 기본적인 근거가 된다.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은 ‘첨부지도 제3도’에서 서해 5도와 인근 도서에 관한 통제권을 획정했는데 여기에는 ‘황해도와 경기도의 도계선 북쪽과 서쪽에 있는 모든 섬 중에서 아래 5개 도서군(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을 제외한 기타 모든 섬은 조선인민군최고사령관과 중국인민지원군사령관의 군사통제하에 둔다’는 주석이 달려 있다. 도계선 북쪽·서쪽에 있는 섬 중 서해 5도를 제외하고는 북한에 넘겨준다는 뜻이다. 우리 섬 우도의 경우 도계선 북쪽에 있지만 이 규정에 따라 통제권을 우리가 갖고 있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20년 가까이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북이 NLL을 부정하고 나온 데에는 북한의 해상 군사력 증강이 배경으로 꼽힌다. 1970년대 이전까지 북의 해군 군사력은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후 북한이 NLL을 부정하고 자체적으로 해상 군사분계선을 설정함으로써 해상 무력 충돌의 원인이 됐다. 1999년 1차 연평해전, 2002년 6월 2차 연평해전, 2009년 11월 대청해전, 2010년 연평도 포격전 등이다. 서해 NLL 일대가 남북 간 갈등의 원인이 되자 2007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서 공동어로수역 지정과 평화수역 조성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같은 해 11월 국방장관회담과 12월 장성급회담에서 관련 논의가 이뤄졌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2018년 1차 남북정상회담에서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서해 평화수역 조성을 논의했다. 9·19 군사합의 당시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안전한 어로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군사적 대책을 취해 나가기로 하였다’(3조)고 명시했지만 북한은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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