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27일 오전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오전 정상회담 후 양 정상이 기념 식수를 하고있다./한국공동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27일 오전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오전 정상회담 후 양 정상이 기념 식수를 하고있다./한국공동사진기자단

한국관광공사가 UN과 미국의 대북 제재를 우회해 총사업비 23조원가량의 ‘한반도 평화관광 계획’을 추진하려 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한국관광공사는 만성 적자 때문에 대출받은 1,000억 원대 남북협력기금도 못 갚고 있는데, 막대한 사업비로 문재인 정부의 반발을 샀던 4대강 사업(22조 원)보다 더 많은 예산이 소요되는 남북경협의 일환인 남북관광협력 사업을 추진하려 한 것이다.

《월간조선》이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실로부터 입수한 ‘남북관광협력 추진방안 연구’라는 제목의 A4 74페이지 분량의 용역보고서를 보면 남북 관광 협력사업 추진을 위한 법률적 장애는 무엇이고, 해소 방안은 무엇인지 등이 자세히 나와 있다.

한반도 평화관광 기본계획수립 연구 보고서 표지

한반도 평화관광 기본계획수립 연구 보고서 표지

이 용역보고서는 손꼽히는 국내 거대 로펌에서 작성했다. 용역 시행일은 2018년 6월 7일이었고, 종료일은 2018년 6월 30일이었다. 이 용역 시행일이 주목받는 이유는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1차 남북 정상회담을 갖고, 선언문을 발표한 이후이기 때문이다.

선언문에는 1-6항에는 이런 내용도 있었다.

<남과 북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번영을 이룩하기 위하여 10.4 선언에서 합의된 사업들을 적극 추진해 나가며 1차적으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현대화하여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들을 취해나가기로 하였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이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한 10·4선언에는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은이 합의한 것으로 남과 북은 백두산 관광을 실시하며 이를 위해 백두산-서울 직항로를 개설하기로 하였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남북이 한반도 평화관광 사업에 대해 사실상 합의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1차 정상회담 직후인 2018년 5월 17일 공석이었던 한국관광공사 사장에 안영배 전 국정홍보처 차장이 임명됐다.

‘미디어오늘’ 편집국장과 노무현재단 사무처장을 지낸 안영배 사장은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캠프인 ‘광흥창팀’에 몸담았던 친노, 친문 핵심이다. 임종석 전 비서실장, 윤건영·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 송인배 전 제1부속비서관 등이 광흥창팀 멤버였다.

친노, 친문 핵심인 안 사장이 관광공사 사장으로 임명된 직후'UN과 미국의 대북 제재를 우회'하는 내용을 담은 ‘남북관광협력 추진방안 연구’용역을 맡긴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2018년 4·27 남북정상회담 직후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는 방안을 검토한 문건이 다수 확인된 것과 비슷한 모양새다.

이와 관련 한국관광공사 측은 “남북관광 재개에 대비한 관련 법제도 검토 및 추진체계 정비를 통한 활성화 준비를 위해 용역을 추진한 것”이라고 했다.

이 용역은 수의계약이었다. 용역 비용은 2,200만 원. 용역비용이 2,000만 원 미만이면 수의계약 대상이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26조에 따르면 공공기관의 수의계약은 추정 가격이 2,000만 원 이하인 물품의 제조·구매 계약 또는 용역계약에 대해서만 가능하다.

'남북관광협력 추진방안 연구' 용역 보고서 중.

'남북관광협력 추진방안 연구' 용역 보고서 중.

UN과 미국 대북 제재 법률적 허점 담겨

한 달 만에 용역보고서가 완성됐는데, 관광공사는 1차 남북 정상회담 후 서둘러 수의계약으로 대북 제재의 법률적 허점을 밝혀내려 한 것으로 보인다.

국회 관계자는 “원래 이런 용역은 최소 10개월 정도가 걸리는데, 한 달도 안 돼 완성했다”며 “남북 정상회담 직후 제재를 피해 북한에 관광을 매개로 지원할 방법을 거대로펌에 검토하게 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반영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보고서는 UN 대북 제재와 관련해 여러 차례 북한의 핵 실험에도 불구, 개성공단이 2016년 2월까지 폐쇄되지 않고 UN안보리결의 체계와 공존할 수 있었던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명시했다.

미국 독자 제재에 대해선 남북관광협력 사업의 경우 각종 서비스 교역의 주체는 미국 내에 동결될 자산이 없는 국내 사업가들이 되고, 이들의 대금 지급은 현금 거래를 통하는 것이 미국 대북 제재의 영향을 피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것으로 전망했다.

UN, 미국 대북 제재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법률적 허점을 찾아낸 것이다.

‘한반도 평화관광 기본계획 수립연구’ 용역보고서 살펴보니

이 용역보고서가 나오고 3개월쯤 뒤인 2018년 9월 18일 문재인 대통령은 방북했다. 이날 문 대통령과 김정은은 군사적 적대관계 종식, 동·서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 이산가족 상설면회소 등의 내용을 담은 ‘9월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했다.

2-2조 항에는 관광과 관련한 내용도 있었다.

<남과 북은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을 우선 정상화하고, 서해경제공동특구 및 동해관광공동특구를 조성하는 문제를 협의해나가기로 하였다.>

문 대통령의 평양공동선언에 담긴 관광 관련 내용 때문인지 관광공사는 2019년 4월 17일 1억8,300만 원을 들여 한 업체에'한반도 평화관광 기본계획 수립연구' 용역을 의뢰했다. 11월 15일 최종보고서가 나왔다.

관광공사는 용역 의뢰 목적을 “‘국정과제90 :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 및 2018 남북 정상회담 합의 사항 이행을 위한 사전 준비 및 한반도 관광 재개 가능성 증대에 따른 한반도 관광 활성화 대비”라고 설명했다.

이 보고서는 남북을 4개 권역(동해관광공동특구권역, 서해수도연계권역, 두만강국제접경권역, 신의주·압록강 관광권역)으로 나눠 ‘한반도 평화관광 계획’을 수립했다. 이 용역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12명이 참여했다. 분량만 A4 기준으로 250페이지가 넘는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반도 평화관광 계획’의 총사업비는 23조 원(23,209,4백만 원)이다. 보고서는 우리 정부 재원, 국제 사회 재원, 국내외 민간자본으로 예산을 조달한다는 방안이다.

우선 우리 정부는 남북협력기금(약 1조 원), 공적 개발 원조(ODA) 3조 482억 원, 관광진흥개발기금 등으로 충당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정치적 리스크에 따른 민간 초기 참여 저조를 방지하기 위해 정부 주도의 재원 투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민간의 투자로 빈민구제, 환경보호, 공공 보건 등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사업을 수행하고 성과에 따라 정부의 공적자금으로 투자금과 수익금을 상환하는 금융상품을 개발해야 한다고 했다.

문제는 그동안 남북경협에서 우리의 ODA 예산을 사용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관광진흥개발기금 또한 남북관광협력에 사용할 수 있도록 기금법 시행령의 개정이 필요하다.

또 금융상품의 경우 사업 실패 때 정부와 민간이 나눠 부담을 해야 한다. 민간 투자로 정부의 예산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북한이 입 싹 닫으면 피해는 오롯이 우리 국민의 몫이다.

국제 사회 재원으로는 ODA를 꼽으면서 비핵화가 가시화되면 이 자금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국제 금융 기구(AIIB, IMF, ADB)로부터 무상 원조 및 양허성 차관 도입 등을 아이디어로 내놨다.

국내외 민간자본은 대우건설, SK건설, 현대아산, 대명리조트, 롯데관광개발 등 국내 기업과 중국, 싱가포르 등 관심을 보이는 곳에서 투자를 받겠다는 계획이다. 빌 앤 덜린다 게이츠 재단, 웰컴트러스트, 포드재단 등 글로벌 NGO 기금도 한반도 평화관광 사업에 지원할 수 있다고 했다.

또 다수의 공여자로부터 출연된 자금을 특정한 개발 목적과 사업 수행을 위해 공동으로 지원하는 기금인 ‘다자간 신탁기금’ 제도를 활용, 가칭 ‘북한 지원 신탁기금’ 설립을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아프가니스탄 부흥 신탁 기금(ARTF), 이라크 재건 신탁기금(IFFRI) 모델이다.

北의 비핵화로 해외 투자금 조달 못하면 사업비용은 우리가?

자금 조달 방안의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을 떠나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앞서 설명했듯 전제가 북한의 비핵화인데, 그들의 입장은 단 한 번도 바뀐적이 없다.

UN, 미국 제재 때문에 해외 투자가 전무할 경우 사업비용은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전액 충당하는 것은 아닐까. 김선교 국민의힘 의원이 관광공사로부터 입수한 관련 자료를 보면 우려가 현실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자금 조달 계획이 UN, 미국의 제재 때문에 무산될 경우 어떻게 할 것이란 질의에 관광공사는 검토한 바없다고 했다. 남북 연계 관광사업으로 수익을 날 경우, 어떻게 배분할 것이냐는 질의에도 검토하지 않았다고 했다. 2025년 4천 만명의 외래관광객이 찾는 한반도 평화 관광달성을 목표로 삼았음에도 수익분배에 대해 검토한 적이 없다는 이야기다. 북한은 수익으로 핵과 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다.

관광공사측은 아니라고 손사레 치겠지만 “검토하지 않았다”는 것은 해외 투자가 전무할 경우, 우리 자금으로만 충당하고 수익이 나도 북한에 모두 제공한다는 뜻으로 충분히 곡해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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