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토니 블링컨 미 국무 장관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외교·국방장관회의에 앞서 기념촬영을 마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토니 블링컨 미 국무 장관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외교·국방장관회의에 앞서 기념촬영을 마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미국 알래스카에서 열린 첫 미·중 고위급 회담에서 양측이 난타전을 벌인 가운데, 한·미는 북한에 대한 비핵화 용어 사용을 놓고 마찰을 빚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의 책임을 강조한 ‘북한 비핵화’란 용어를 사용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북한이 인정하는 ‘한반도 비핵화’가 “옳다”는 입장이다. 미·중 충돌 속에, 북핵에 공동 대응해야 하는 한·미가 비핵화 용어조차 합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토니 블링컨 미 국방부 장관은 지난 16~18일 한·일 순방 기간 동안 줄곧 “북한 비핵화에 전념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어떤 표현이 맞느냐’는 질문에 “한반도 비핵화가 올바른 표현”이라고 했다. 그러자 미 국무부는 이날 정 장관의 발언에 대해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라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나와있는 것처럼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이 불법이고 국제사회 평화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일견 ‘북한 비핵화’나 ‘한반도 비핵화’는 같은 의미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북한 비핵화’는 핵·미사일의 개발·제조 책임이 북한 정권에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북한에 대한 완전한 비핵화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반면 ‘한반도 비핵화’는 남한을 포함한 한반도 전역의 비핵화를 말하는 것으로 북한식 표현으로는 ‘조선반도 비핵화’이다. 이는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고 있는 핵우산과 확장 억제 정책까지 없애야 한다는 뜻이 포함돼 있다.

 

물론 미국과 국제사회는 그동안 북한을 협상장에 끌어들이기 위해 ‘한반도 비핵화’란 용어와 ‘북한 비핵화’란 말을 혼용해 왔다. 지난 2018년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공동선언문에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노력한다’는 표현이 있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 들어선 용어 사용이 확연히 달라졌다. 블링컨 장관은 지난 2월 유엔 군축회의 화상연설에서 “북한 비핵화”란 표현을 사용했고, 지난 12일 열린 미국·일본·인도·호주 4국 연합체인 쿼드(Quad) 첫 정상회의 공동성명에도 같은 용어가 사용됐다. 비핵화에 대한 오해의 여지를 남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마크 내퍼 미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는 이날 온라인 기자 간담회에서 비핵화 용어로 인한 한·미 갈등 가능성에 대해 즉답을 피하며 “(한·미는) 다양한 사안에 대해 매우 심도 깊은 논의를 했다”고 말했다고 RFA는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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