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방한하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AFP 연합뉴스
17일 방한하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AFP 연합뉴스

미국의 유력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15일 미 국무·국방 장관의 방한을 앞두고 펴낸 ‘한미 동맹을 위한 권고 사항’이란 보고서에서 “북한 인권 문제는 그 어떤 미·북 간 정치적 관계 개선 과정에서도 필수적으로 문제 삼아야 한다”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풍파를 겪은 한미 동맹의 활성화 방안을 담은 이 보고서는 CSIS의 존 햄리 소장과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가 함께 작성했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한미 동맹 복원을 다룬 유력 싱크탱크 보고서에 북한 인권이 거론된 것 자체가 한국 정부엔 뼈아픈 대목”이라고 했다. 한국 정부는 2019·2020년에 이어 올해도 40여국이 동참한 유엔인권이사회 북한인권결의안 초안 제출에 불참해 “북한 인권을 외면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미국 전직 관리들은 한국의 이 같은 태도를 전례 없는 강도로 비난했다. 에번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 부차관보는 14일(현지 시각) 미국의소리(VOA) 방송에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은 솔직히 실망스럽고 부끄럽다”고 했다. 최근 대통령 특보를 지낸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이 “인권 문제가 대두되면 대북 협상이 깨질 위험이 크다”고 말한 데 대해선 “북한 주민들에게 최악의 메시지”라고 했다.

마이클 그린 전 백안관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은 “역사는 북한 인권에 대한 현 청와대의 접근법을 좋게 평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로버타 코언 전 미 국무부 인권 담당 부차관보는 “한국이 공동 제안국에서 빠지는 것은 결의안의 영향력과 북한의 인권 (유린) 관행에 반대하는 국가들의 결속을 허문다”고 했다.

 

VOA는 “공동 제안국에 한국이 올해도 이름을 올리지 않은 데 대해 실망과 우려를 넘어 분노에 가까운 반응이 나온다”며 “북한 인권 정책에 관한 한 전직 미국 관리들에게서 동맹을 배려한 외교적 수사를 듣기 어려워졌다”고 했다.

앞서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지난 10일 유엔인권이사회에서 한국 정부를 향해 북한과 협상 시 인권 문제를 함께 다룰 것, 5년째 표류 중인 북한인권재단의 설립을 비롯해 북한인권법을 제대로 시행할 것 등 권고 사항 8개를 발표했다. 북한 인권에 눈감아온 한국 정부의 직무유기를 유엔도 꼬집은 것이다.

이런 가운데 김석기·김기현·태영호·지성호 등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날 이인영 통일부 장관을 만나 북한 인권을 외면하는 정부의 태도를 따졌다. 이들은 “문재인 정권은 김정은 남매의 눈치를 보며 북한 주민의 인권 탄압에 눈을 감고 있다”며 “북한인권결의안 공동 제안국에 참여하고 북한인권법을 올바로 시행하라”고 요구했다.

유엔과 미국 등 국제사회의 우려와 비판은 북한 인권 문제에 관한 한국 정부의 ‘직무유기’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는 “북한과의 테이블에 인권 문제를 올리는 건 우선순위가 아니다”(강경화 전 외교장관)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외교가에선 17일 방한하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북한 인권 문제를 거론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한미가 북한 인권 문제로 엇박자를 내면 대북 정책 조율도 어려워질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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