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21년 1월 14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제8차 대회 기념 열병식에 참석해 밝은 표정으로 열병 종대를 향해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21년 1월 14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제8차 대회 기념 열병식에 참석해 밝은 표정으로 열병 종대를 향해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 정권이 석탄 생산에 정치범수용소 수감자와 가족을 강제 동원하고 있으며, 고강도 제재로 석탄 수출이 막힌 상황에서도 생산량을 계속 늘려 온 것으로 파악됐다.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이 석탄은 주로 김정은 정권의 외화벌이를 위해 불법 수출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인권시민연합은 최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보고서 ‘북한의 피로 물든 석탄 수출’을 발표했다.

◇탄광에서 노예노동하는 정치범과 가족들

보고서는 평안남도 북창 지역의 탄광들에 주목했다. 북한 최대의 무연탄 산지인 ‘평남 석탄 벨트’에 속하는 북창엔 ’18호 관리소'로 불리는 정치범수용소가 있고, 수감자들은 주로 석탄 생산에 동원된다. 인근 14호 관리소(평남 개천)와 함께 국가보위성(국정원 격)·사회안전성(경찰)이 특별관리하는 지역으로 내부 사정은 베일에 싸여 있다.

북한인권시민연합이 최근 발간한 '북한의 피로 물든 석탄 수출' 보고서 영문판 표지.
북한인권시민연합이 최근 발간한 '북한의 피로 물든 석탄 수출' 보고서 영문판 표지.

이 지역 출신 탈북자들 증언에 따르면, 18호 관리소 탄광지대에 수감된 광부는 6400여명, 가족과 관리인원까지 포함하면 약 3만명이다. 이들은 지하갱 9곳 등 12개 탄광에 배치돼 매일 3교대로 24시간 석탄 생산에 내몰린다. 탄광 노동자들에겐 교대근무를 마친 뒤에야 식권이 제공되는데, 그나마도 하루 할당량(채탄공의 경우 약 10t)을 채운 경우에만 허용된다. 휴일은 한 달에 하루다. 죽을 때까지 이런 생활이 이어진다.

남성은 주로 다이너마이트 폭파, 여성은 석탄 운반을 맡는다. 썩은 나무기둥을 새것으로 교체하는 ‘보수공’ 중엔 한국 국군포로 출신들이 많다고 한다. 자녀들은 오전에만 학교에 나가고 오후엔 철로에 떨어진 석탄 줍기에 동원된다. 1인당 대야 5개(20~25㎏)를 채워야 한다. 탄광 발파에 쓰이는 진흙도 모아야 한다. 덩치가 큰 아이들은 광산 내 지지대로 쓰이는 나무를 베야 한다. ‘반쪽 학교’ 생활도 중학교 4학년(16세)에 끝난다. 그 이후엔 부모 죄명에 따라 탄광 일을 배정받는다.

열악한 작업 환경 속에 각종 사고가 빈발한다. 방진 마스크는 지급되지 않고, 1년에 한번 지급되는 안전모는 여기저기가 깨진 경우가 다반사다. 한 증언자는 자신이 속했던 채탄소대의 경우 처음엔 23명이었지만 가스 폭발, 천장 붕괴 등의 각종 사고로 10명이 죽었다고 했다. 지하에서 폭발이 일어난 경우 시신 훼손이 심해 신원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폭발·매몰 사고 지점이 깊은 경우에는 구조 자체를 시도하지 않는다. 수백m씩 파내려 갈 장비가 없기 때문이다.

◇'피의 석탄'은 달러가 된다…김정은을 위해

2015년4월~2019년4월 위성사진 분석 결과, 18호 관리소는 지속적으로 확장됐고 2017년 무렵부터는 탄광 주변에서 식별된 석탄 더미의 면적이 급속도로 넓어졌다. 북한의 핵폭주에 따른 안보리 제재로 석탄 수출이 막힌 시점인데도 석탄 생산량을 늘린 것이다. 보고서는 18호 관리소와 그 주변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는 탈북민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이 지역 12개 탄광에서 강제노동을 통해 생산되는 석탄이 연간 800만t에 달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공식 통계상 연간 북한의 석탄 전체 생산량이 2000만~3000만 t임을 감안하면 상당한 규모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 캐낸 석탄은 공식 통계에 산입되지 않을뿐더러 내수용으로 쓰이지도 않는다는 게 연구진의 분석 결과다. 인근에 북창화력발전소가 있지만 이곳에서 쓰는 석탄은 제남탄광 등 덕천 지역에서 공급한다는 것이다. 통일부 북한정보포털에도 이 같은 내용이 기술돼 있다. 실제 평남 지역을 시찰하는 북한 고위 간부들은 대부분 제남탄광과 북창화력발전소를 연계해 방문한다. 북한의 전력사정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는 것도 북창에서 캐낸 석탄이 내수용으로 쓰이지 않는다는 분석을 뒷받침한다.

김덕훈 북한 내각 총리가 2020년 10월 평안남도의 주요 탄광지대인 덕천지역 탄광들을 돌아보고 있다. 김덕훈은 당시 제남탄광, 남덕청년탄광과 북창화력연합기업소를 시찰했다. 덕천은 정치범수용소 수감자들이 석탄을 생산하는 북창과 인접해 있다. 비밀리에 강제노동 방식으로 운영되는 북창지역 탄광들과 달리 덕천의 제남탄광 등은 외부에 공개된 탄광으로 북창화력발전소 등에 석탄을 공급한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덕훈 북한 내각 총리가 2020년 10월 평안남도의 주요 탄광지대인 덕천지역 탄광들을 돌아보고 있다. 김덕훈은 당시 제남탄광, 남덕청년탄광과 북창화력연합기업소를 시찰했다. 덕천은 정치범수용소 수감자들이 석탄을 생산하는 북창과 인접해 있다. 비밀리에 강제노동 방식으로 운영되는 북창지역 탄광들과 달리 덕천의 제남탄광 등은 외부에 공개된 탄광으로 북창화력발전소 등에 석탄을 공급한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그렇다면 노예노동을 통해 캐낸 북창의 석탄은 어디로 가는 걸까. 보고서는 “(북창에서) 생산된 석탄 대부분이 정권에 상납해야 하는 외화를 벌기 위해 (불법) 수출에 사용된다는 다양한 목격자 진술이 있었다”고 했다. 북한인권시민연합 연구진은 18호 관리소 수감자 구역에 있는 석탄 수용 전용 기차역 2곳을 식별했고, 이곳을 지나는 철도가 남포항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남포항은 석탄을 비롯해 북한의 각종 합법·불법 화물을 적재한 온갖 선박이 드나드는 주요 항구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는 2019년 보고서에서 남포항을 ‘불법 활동의 허브’로 명명했다.

보고서는 “정치범수용소에서 생산된 물품의 교역이 북한의 노예제도를 지탱하고 있다”고 했다. 김석우 전 통일부 차관은 “북한의 석탄 불법 수출을 용인하는 것은 제재 불이행의 차원을 넘어 북한의 인권 유린을 후원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12월 소집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3차 확대회의에서 발언 도중 두 팔을 벌려 보이고 있다. /조선중앙TV 뉴시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12월 소집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3차 확대회의에서 발언 도중 두 팔을 벌려 보이고 있다. /조선중앙TV 뉴시스

이번 보고서 제목에 들어간 ‘피로 물든 석탄’(Blood Coal)이란 표현은 ‘피로 물든 다이아몬드’(Blood Diamond)를 연상시킨다. 아프리카 분쟁지역의 군벌들이 아동들을 착취해 생산한 다이아몬드를 내다 팔아 부를 쌓고 무기를 사들이는 것처럼, 북한 정권 역시 김정은 통치자금 마련을 위해 정치범·국군포로들을 노예로 부려 불법 수출용 석탄을 캐내고 있는 ‘불편한 진실’을 고발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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