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전인 지난 2010년 북한군의 위장 전술을 망라한 비밀 교범을 입수해 보도한 적이 있다. ‘전자전(電子戰) 참고 자료’라는 명칭이 붙은 80여 쪽 분량의 책자였다. 여기엔 북한군이 북한 내 주요 군 기지, 시설을 추적·감시하는 한·미 양국의 정찰위성, 정찰기 등을 속이기 위해 스텔스 페인트(도료) 등 각종 위장 수단과 가짜 시설·장비들을 광범위하게 개발한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조선 인민군 군사출판사가 지난 2005년 발간한 이 문서에 따르면 북한군은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한·미 양국군의 전자전 및 첨단 감시 정찰 장비에 치밀하게 대응책을 준비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김정일은 “내가 여러 번 이야기하였지만 현대전은 전자전이다. 전자전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현대전의 승패가 좌우된다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이 문서는 전했다.
이 교범에는 오키나와 가데나 기지에서 북한 인근 상공에 종종 출동하는 미군 RC-135 정찰기, 한국군의 금강·백두 정찰기가 보통 12㎞ 고도에서 정찰 활동을 펴고 있는 점을 감안, 12㎞ 고도의 정찰기로부터 은폐할 수 있는 시설 높이가 거리에 따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를 분석한 도표까지 담고 있었다. 우리 군 최전방 지역에 배치돼 있는 지상 감시 레이더를 속이려면 보병은 시속 1㎞ 이하로 움직이고 앞사람과의 간격은 5m를 유지하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북한군이 이 교범을 만든 지 16년이나 지났기 때문에 그 사이 한·미 감시 정찰 무기를 속이기 위한 북한군의 기만술과 장비는 더욱 발전했을 것이다. 우리 군 당국은 이에 대해 밤낮으로 가짜 장비를 구별해 낼 수 있는 SAR(영상 레이더) 장비를 갖춘 정찰기와 정찰위성 도입 등 대북 정보 감시 능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이는 문재인 정부의 전작권(전시작전통제권) 조기 전환과 맞물려 강조되고 있다.
군 당국이 자랑하는 정찰기의 대표 주자는 미국제 글로벌 호크 장거리 고고도 무인정찰기다. 글로벌 호크는 지상 20㎞ 상공에서 레이더와 적외선 탐지 장비 등을 가동해 지상 30㎝ 크기 물체까지 식별할 수 있다. 작전 반경이 3000㎞에 달하고 32~40시간 연속 작전을 펼칠 수 있어 사실상 24시간 한반도 전역을 감시할 수 있다. 한국군은 이 밖에 금강·백두 정찰기, RF-16 전술 정찰기, 무인기 등 다양한 대북 감시 정찰 수단을 운용하고 있다. 주한미군은 DMZ(비무장지대) 북쪽 150여㎞ 지역까지 장시간 정밀 감시가 가능한 U-2 정찰기를 거의 매일 오산기지에서 발진시켜 대북 감시를 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호크나 U-2 같은 무인기와 정찰기들은 지구 곡면과 카메라 특성에 따른 사각(死角)지대가 생기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U-2 와 글로벌 호크 무인기는 최대 20㎞ 고도에서 북한 지역을 향해 사진을 찍는다. 100㎞ 떨어진 북한 지역에 2000m 높이의 산이 있을 경우 지구 곡면 때문에 산 뒤쪽으로 10㎞ 가량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사각지대가 생긴다.
그러면 1조원이 넘는 돈을 들여 정찰위성 5기가 도입되면 독자적인 북핵 정보 감시 능력이 확보될까? 전문가들은 정찰 위성의 태생적인 약점 때문에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위성이 북한 상공을 한 번 통과할 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기 때문이다. 정찰 위성이 북 상공을 한 번 통과할 때 실제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간은 3~4분에 불과하다고 한다. 하루에 5차례 북한 상공을 통과할 경우에도 실제 누적 촬영(감시) 시간은 15~20분에 불과하다. 정찰위성이 한 번에 찍을 수 있는 북한 지역의 폭도 10~50㎞ 정도다.
425사업으로 5기의 대형 정찰위성이 배치되더라도 정찰 주기는 2시간가량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각 시간'이 2시간가량이란 얘기다. 2시간이면 북한 미사일 이동식 발사대가 시속 20~30㎞의 비교적 느린 속력으로 이동할 경우에도 40~60㎞가량이나 움직일 수 있다.
군 당국은 이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초소형 정찰위성 등을 개발하고 있다. 초소형 위성은 대형 정찰위성에 비해 가격이 20~30분의 1에 불과하고 30여기를 띄울 경우 사각 시간을 30분 정도로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초소형 위성도 빨라야 2024년쯤 시험 발사할 수 있어 수십기 체제를 갖추려면 2020년대 중반 이후에야 가능하다.
북한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열병식을 통해 다수의 KN-23 신형 전술미사일과 600㎜ 초대형 방사포 이동식 발사대를 선보였다. 향후 2~3년 뒤에도 우리 대북 정보 감시 능력의 한계가 많은데 파악해야 할 북한의 이동 표적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현 정부와 군 수뇌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전작권 전환을 가속화하겠다”며 임기 내(2022년) 전작권 전환에 조바심을 내고 있다. 전작권 전환을 위해선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우리 군의 대응 능력을 갖추는 게 필수 조건이다. 이 대응 능력에는 북한 핵·미사일에 대한 타격 및 방어 능력도 중요하지만 북 표적을 실시간으로 정확히 파악하는 정보 감시 능력이 핵심이다. 현 정부의 염원인 전작권 전환은 우리 군의 대북 정보 감시 능력 수준을 정확히 확인하고 발전시키는 데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