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5일 북한 문제를 언급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주어진 시간 내 가시적 성과를 올리기 위해 서두르진 말라”고 했다. 2019년 ‘하노이 노딜’로 미·북 대화가 중단된 이후 문 대통령은 줄곧 ‘조속한 미·북, 남북 대화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연초에도 이런 입장을 재확인했는데 한 달여 만에 ‘속도 조절’로 해석될 수 있는 말을 한 것이다. 이는 ‘트럼프식 미·북 쇼’와 확실히 선을 긋고 있는 미국 바이든 행정부와 일단 코드를 맞추려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이날 정의용 신임 외교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차근차근 접근해 주시기 바란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성공하려면 한·미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 바이든 신정부와 긴밀히 소통하고 협력해야 가능한 일”이라며 “주변국과도 긴밀히 협력하라”고도 했다.

문 대통령의 ‘서두르지 말라’는 언급과 관련, 여권에서는 “현실의 벽을 인정한 것 아니겠냐”는 말이 나왔다. 그만큼 이날 발언이 이례적이라는 얘기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신년 회견까지만 해도 “싱가포르 선언을 구체화시키는 방안에 대해서 북·미 간에 보다 속도감 있게 대화를 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싱가포르 합의의 상징과도 같은 정의용 장관을 새 외교 사령탑으로 임명했고, 정 장관은 청문회에서 “북·미 대화의 조기 재개를 위해 외교력을 집중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미 측 외교·안보 라인과의 연쇄 협의를 거치면서 전략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4일 통화에서 북한 문제를 원론적으로만 언급한 뒤 한·일 관계 개선 및 중국 견제를 위한 한·미·일 협력을 강조했다. 미 국무부도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한·일이 긴밀히 조율하지 않게 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결국 한·일 관계 개선을 통해 한·미·일 공조를 복원하기 전에는 미국이 북한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청와대 관계자는 “서두르지 말라는 것은 어거지로 뭘 하려고 애쓰지 말라는 것이지 남북 대화 추진 등 기존 정부 방침이 바뀐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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