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4일 첫 통화에서 가급적 조속히 포괄적 대북 전략을 함께 마련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인식을 같이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하지만 북한 문제의 핵심 쟁점인 비핵화 방법론 등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없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8시 25분부터 57분까지 32분간 바이든 대통령과 통화했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 14일 만이다. 문 대통령은 통화에서 “한반도 비핵화 및 항구적 평화 정착을 진전시키기 위해 공동 노력해 나가자”고 했다. 이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은 “한반도 문제 해결의 주된 당사국인 한국 측 노력을 평가한다”며 “한국과 같은 입장이 중요하다”고 했다. 한반도 문제에서 ‘같은 입장’을 강조한 것을 두고 일각에선 문 대통령이 주도해온 대북 정책에 이견을 드러낸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지만, 청와대는 “한국과 긴밀히 협의하고, 공조하겠다는 취지”라며 “전혀 이견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청와대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한반도 비핵화, 평화 정착을 위해 함께 노력해 나가자”고 했다.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청와대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한반도 비핵화, 평화 정착을 위해 함께 노력해 나가자”고 했다. /청와대

이날 두 정상이 언급한 ‘포괄적 대북 전략'은 그동안 문재인 정부와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해온 대북 정책의 기조 수정을 의미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바이든 행정부는 미북 정상회담처럼 톱다운 방식을 선호하는 트럼프식이 아니라, 구체적 실무 협상과 한국-일본 등 동맹과 공조를 중시하는 다자주의적 접근법을 내세울 것임을 예고한 바 있다. 실제 백악관은 지난 달 22일 언론 브리핑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이 북핵을 심각한 위협으로 보고 있고 북핵 억제를 위해 한국, 일본 등 동맹국들과 긴밀히 협의해 철저히 검토해 나가겠다”며 대북 정책 전환을 예고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 때의 ‘싱가포르 합의'를 강조하는 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 사이에서 조정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이날 통화에서는 ‘포괄적 대북 전략'만 언급했을 뿐 북핵 문제에 대한 구체적 각론은 없었다.

정상 통화 이후 백악관이 내놓은 보도 자료에는 “두 정상은 북한에 관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합의했다”는 내용만 짧게 포함돼 있고 청와대가 발표한 한반도 비핵화 등은 빠졌다. 두 정상은 한미 정상회담 개최 시기 등도 논의하지 못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코로나 진정 시까지로 여백을 남겨놓을 수밖에 없겠다”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문 대통령에게 한일 관계 복원을 주문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양 정상이 한일 관계 개선과 한미일 협력이 역내 평화와 번영에 중요하다는 데 공감했다”고 했다. 한국과 일본이 징용 및 위안부 판결을 두고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일 관계 개선을 요구하는 미국의 요구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 견제 및 북핵 문제 대처를 위해 한미일 안보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청와대는 바이든 대통령의 한일 관계 개선 언급을 발표했지만, 정작 백악관 발표에선 이 부분이 빠졌다.

한편 이날 통화에선 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같은 가톨릭 신자라는 대화를 주고받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문 대통령이 가톨릭 신자라고 하시니 당선 직후 교황께서 축하 전화를 주신 기억이 난다”고 하면서 “당시 기후변화, 민주주의 등 다양한 이야기를 했는데 오늘 문 대통령과 같은 주제에 대해 이야기해 보니 우리 두 사람이 견해가 비슷한 것 같다”고 했다. 청와대는 “실제로 두 정상은 코드가 잘 맞는 대화를 나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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