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자리(은행 계좌)’ ‘저금소(은행)’나 아는 북한에서 온 사람들이 한국에서 쓰는 복잡한 금융 용어를 제대로 알 수 있겠습니까?”

김병욱(58) 북한개발연구소 소장이 ‘ATM(자동화기기)’이나 ‘M&A(기업 인수·합병)’처럼 탈북민에게는 알쏭달쏭한 외래어 같은 금융 용어 120개를 정리한 사전을 만든다. 오는 9월 발간 예정인 ‘남·북한 금융 용어 백과사전’이다. 지난달 서울 마포의 사무실에서 만난 김 소장은 “금융 서비스 활용법과 금융 사기 예방법도 담아 종합적인 금융 생활 안내서가 되게 하겠다”고 했다.

/고운호 기자
/고운호 기자

2002년 가족과 탈북한 김 소장은 2011년 북한 출신으론 처음으로 국내 대학교(동국대)에서 북한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최근 집필에 들어간 사전은 그를 포함해 천규승 미래교육경제네트워크 이사장, 이기송 신용카드학회 상임이사 등 남북한 출신 금융 전문가 26명이 함께 제작하는 것이다. 집필은 한국 쪽 전문가들이 하고, 북한 출신 전문가들은 핵심 용어를 정하고 조언하는 역할을 맡는다. 김 소장은 “남한 출신 11명, 북한 출신 15명을 골고루 섞었다”며 “이렇게 공동으로 만드는 일부터가 남북 금융 교류의 시작”이라고 했다.

김 소장은 탈북민의 ‘금융 정착’을 강조했다. 그는 “탈북민들은 외래어가 마구 섞인 용어를 이해하기 어려우니 아는 사람 말만 믿고 전 재산을 덜컥 투자하기도 한다”며 “가진 것 없이 한국에 왔는데 금융 생활도 엉망이니 일을 해도 취약 계층에서 벗어나기 힘든 악순환이 생긴다”고 했다.

그는 “북한에서 회계를 전공한 아내 덕분에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보다 두 살 어린 아내 김영희씨가 2013년 동국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아 부부는 ‘탈북자 출신 1호 박사 부부’가 됐다.

“한 탈북민 모임에서 저를 뺀 나머지 모두가 금융 사기 피해 경험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남한에서 빚 수천만원을 진 탈북민이 결국 재입북했다’는 얘기도 들려왔습니다. 목숨 걸고 탈북했는데 금융 생활이 망가져 북한으로 돌아갔다는 겁니다.” 그는 “탈북민들이 자본주의 시스템에 잘 적응하도록 돕는 일이 정착의 첫걸음”이라고 했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