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미사일은 미국과 동맹의 이익에 반하는 압도적인 1등 위협이 됐다. 비핵화는 물 건너갔다.”

폴 스테어즈 미 외교협회 예방정책센터장. /CFR
폴 스테어즈 미 외교협회 예방정책센터장. /CFR

폴 스테어즈(65) 미 외교협회(CFR) 예방정책센터장은 27일 본지 전화 인터뷰에서 “핵을 가진 북한이란 현실을 잘 관리하고 동맹을 보호하는 게 바이든 정부 최대 도전 과제가 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싱가포르 합의 계승을 통한 북·미 대화 조기 재개를 공언한 가운데, 스테어즈 센터장은 “바이든이 실익이나 실질적 협의가 없는 회담장에 나올 가능성은 없다”며 “대화를 위한 대화는 끝났다”고 했다. 또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아직은 북한 문제의 우선순위가 높지 않다”고 했다.

올해로 창립 100주년을 맞은 싱크탱크인 CFR은 1996년부터 미국과 동맹의 이익을 위협하는 위험을 추려 평가하고 있다. 미 조야(朝野)의 외교·안보 전문가 6000여 명에 대한 설문 조사를 통해 등급을 부여하는데, 일종의 크라우드 소싱을 통한 위험 평가다. 연구진의 주관이 전혀 개입하지 않는 객관성으로 정평이 나있다. 지난 14일 발간된 보고서에선 북핵이 ▲급변 사태 발생 가능성 ▲핵심 이익에 대한 영향력 두 부문 모두에서 ‘높음’을 받아 화제가 됐다.

북한이 지난 14일 저녁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노동당 8차대회를 기념하는 열병식을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5일 보도했다. 열병식에는 단거리 탄도미사일 '북한판 이스칸데르'의 개량형도 등장했다. 지난해 10월 열병식에서 공개됐던 KN-23형과 비교해 탄두모양이 바뀌고 바퀴도 한 축 늘어났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이 지난 14일 저녁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노동당 8차대회를 기념하는 열병식을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5일 보도했다. 열병식에는 단거리 탄도미사일 '북한판 이스칸데르'의 개량형도 등장했다. 지난해 10월 열병식에서 공개됐던 KN-23형과 비교해 탄두모양이 바뀌고 바퀴도 한 축 늘어났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평가와 보고서 작성을 총괄한 스테어즈 센터장은 “북핵은 시리아, 사이버 안보 등 다른 1등급 위협들과 비교해도 압도적인 ‘1등 위협’으로 나타났다”며 “그만큼 북핵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것에 연구진도 놀랐을 정도”라고 했다. 그는 스탠퍼드대 등 학계와 브루킹스연구소 같은 유수 싱크탱크에서 40여 년간 활동했다. 갈등을 분석하고 주요 분쟁으로 확대하는 것을 방지하는 ‘예방 외교(preventive diplomacy)’ 등이 주요 연구 분야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스테어즈 센터장은 “협상의 기술을 과신한 트럼프가 김정은과 수차례 만났지만 비핵화에는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며 “북한의 핵 포기는 없다는 게 ‘워싱턴 컨센서스’가 됐다”고 했다. 그는 최근 폐막한 북한의 제8차 노동당 대회 등을 언급하며 “북한은 지난 4년간 잠수함탄도발사미사일(SLBM) 등 신무기를 계속 개발해왔다. 군축이나 비핵화의 증거가 하나도 없다”고 비판했다.

 
지난 2018년 판문점에서 회동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사진 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 /조선일보DB
지난 2018년 판문점에서 회동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사진 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 /조선일보DB

스테어즈 센터장은 “바이든은 실질적 이득이 없는 한 회담장에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 때 한미가 추구한 이른바 ‘톱다운 방식(top down·하향식)의 외교가 바이든 시대에는 통하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는 “토니 블링컨 신임 국무장관 같은 바이든 정부 주요 인사들의 발언을 들어보면 북핵에 큰 우선순위를 두고 있지 않다”며 “코로나 팬데믹으로 하루 3000~4000명씩 희생되고 있는 9.11 테러 같은 상황이라 당분간은 바이든이 북한 문제에 집중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다만 “결국에는 북한 문제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스테어즈 센터장은 “한미가 북한 문제에 있어 연합 전선을 구축하고, 서로의 장·단기 전략을 잘 배열(align)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북핵의 가장 큰 위협 대상인 한국과 일본의 소통에 물샐틈없어야 한다”며 동맹 간 공조를 강조했다. 27일 있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블링컨 국무장관 간 첫 한미 외교장관 통화에서도 미국은 한·미·일 삼각협력을 강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북한과 대화 채널은 열어놓되 용납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해서는 ‘레드 라인(red line)’을 명확하게 설정해야 한다”고 했다. 또 “북한 인민이 아닌 김정은 등 북한 리더십을 정교하게 조준하는 대북 제재는 계속해서 가져가야 한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