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 대통령 취임 직후인 21일 오전 페이스북 글을 통해 “미국이 돌아왔다”며 “바이든 정부의 출발에 한국도 동행한다. 같이 갑시다”라고 했다. ‘미국이 돌아왔다’는 말은 바이든 대통령이 작년 11월 대선 승리 직후 내놓은 대외 메시지다. 동맹과 다자주의 외교를 경시하며 북한 등 불량 국가들과의 톱다운(하향식) 회담에 치중한 ‘트럼프식 외교’와 결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담고 있다.

‘미국의 귀환’을 환영하는 문 대통령의 말은 표면적으로는 바이든 행정부 노선에 코드를 맞추겠다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트럼프 시절 미·북, 남북 대화로의 복귀에 대한 기대와 의지가 깔려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언급한 ‘3년 전 봄날’을 재연하자는 것이다. 외교·안보 부처들은 문 대통령의 이런 의중을 반영해 이날 연두 업무 보고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기조와 마찰을 빚을 소지가 있는 계획들을 다수 제시했다.

한미 간 주요 현안에 대한 입장
한미 간 주요 현안에 대한 입장

문 대통령은 업무 보고에 앞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주재했다. 문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NSC 전체회의는 ‘하노이 노딜’ 대책 마련차 열린 2019년 3월 회의 이후 1년 10개월 만이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의 모멘텀으로 삼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오랜 교착 상태를 하루속히 끝내고 북·미 대화와 남북 대화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 평화의 시계가 다시 움직여 나가도록 최선을 다해 줄 것을 당부한다”며 “우리 정부에 주어진 마지막 1년이라는 각오로 임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조기 미·북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사흘 전 신년 기자회견에서 “싱가포르 선언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얘기였다.

외교부도 이날 업무 보고에서 “북·미 대화 조기 재개를 통해 실질적인 비핵화 과정에 돌입하는 토대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전날 문 대통령이 ’2018년 한반도의 봄' 국면에서 활약한 정의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차기 외교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것도 ‘조기 미·북 대화 견인’을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싱가포르 합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신의 치적으로 임기 내내 선전한 것으로, 바이든 행정부의 지향점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지명자도 최근 상원 인사 청문회에서 기존 대북 정책의 전면 재검토를 언급하며 “어떤 선택지가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압박을 높이는 데 효과적인지 들여다보겠다”고 했다. 트럼프식 즉흥적 톱다운 외교는 접어두고, 제재 강화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지난 18일 한·미 연합훈련의 조정 문제를 북한과 논의할 수 있다고 말한 것도 향후 한·미 간 갈등의 소지가 있다. ‘방어 훈련을 적에게 물어보고 하는 게 제정신이냐’는 비판에도 국방부는 이날 업무보고 사전 브리핑에서 “북한만 호응하면 군사공동위에서 한·미 연합훈련 등을 논의할 수 있다”며 대통령 발언에 힘을 실었다. 워싱턴 외교가에선 “한·미 연합훈련은 예정대로 진행해야 하며, 만약 조정하더라도 한·미가 논의할 문제”란 인식이 강하다.

국방부는 또 이날 보고에서 “바이든 행정부 초기에 적극적인 정책 협의를 통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의 여건을 조성하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임기 내 전작권 전환’에 대해선 트럼프 행정부조차 난색을 보였고, 바이든 행정부도 비슷한 인식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의 무리한 증액 요구로 표류 중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조기 타결의 가능성이 엿보인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 지명자는 최근 “조기 타결을 추진하겠다”고 했고, 우리 외교부도 “일찌감치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아·태 지역 다자 안보 협의체인 쿼드(Quad), 화웨이 등 중국 IT 기업을 배제하는 ‘클린 네트워크’ 등 반중(反中) 캠페인에 동참하라는 압박은 바이든 정부 아래에서 더 커질 전망이다.

한편 통일부는 이날 업무 보고에서 “남북 간에 발전된 연락·협의 기구를 설치하겠다”고 했다. 7개월 전 우리 자산인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북한에 대해 책임을 묻겠다거나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한다는 얘긴 없었다. 통일부는 또 북과 보건·방역·민생 협력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모두 김정은이 “비본질적 문제”라고 일축한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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