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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 70%가 ‘천안함 폭침' 없는 교과서로 배운다
곽수근 기자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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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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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침 5주기 앞두고… 천안함 선체 둘러보는 軍장병들
천안함 폭침 11주기를 일주일 앞둔 19일 경기도 평택 해군 2함대사령부 안보공원에서 인근 지역 군 장병들이 파괴된 천안함 선체를 살펴보고 있다.

전국 고교 10곳 가운데 7곳이 북한의 천안함 폭침 관련 서술을 아예 누락하거나, 폭침 대신 ‘침몰'이나 ‘사건'으로 서술해 도발 주체를 북한으로 명시하지 않은 한국사 교과서로 수업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전국 고교의 86%(1634곳)에선 우리나라는 ‘정부 수립',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으로 쓴 교과서로 가르치고, 유엔이 대한민국을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로 인정했는데도 조사 대상 1893개 전 고교의 교과서는 ‘선거가 가능했던 한반도 내에서 유일 합법 정부’ 등으로 쓴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계에선 “현대사를 왜곡하거나 사실관계를 잘못 전달한 교과서로 가르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본지가 국회 정경희 의원(국민의힘)실과 함께 전국 17개 교육청을 통해 고교 한국사 교과서 채택 현황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한국사 교과서를 새로 선정한 전국 고교 1893곳 가운데 1310곳(69.2%)의 교과서가 천안함이 북한으로부터 폭침당한 사실을 기술하지 않았다. 8종 교과서 가운데 천안함이 북한의 공격으로 침몰했다는 사실을 ‘천안함 피격'이라는 용어로 서술한 교과서는 금성·동아 2종으로, 조사 대상 고교의 30.8%인 583곳뿐이다.

정부의 교육과정 개정으로 지난해부터 새로 바뀐 이번 고교 한국사 교과서는 2024년까지 사용된다. 일선 고교에서는 정부 검정(檢定)을 통과한 8종 가운데 하나를 골라 한국사 수업 교과서로 쓰고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의 필수 과목인 한국사는 49만명에 이르는 대입 수험생들을 포함해 전국 130만 고교생들이 2~3년간 배운다. 이번 집계에는 한국사를 2학년 때부터 배우는 고교 등 지난해 새 교과서를 채택하지 않은 400여 고교는 제외됐다.

8종 교과서 가운데 채택률 25.3%(479곳)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고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미래엔이 출간한 교과서다. 그런데 여기엔 천안함 사건에 대한 서술 자체가 빠졌을 뿐 아니라 북한의 인권 침해도 다루지 않았다. 반면 남북 교류 사업의 예로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부부의 백두산 정상 사진을 ‘남북 정상의 만남’이라고 소개한 뒤 ‘지금까지 전개된 남북 교류 사업 중에 가장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정하고 그 까닭을 말해보자’는 활동 과제를 제시했다. 북한 도발과 인권 문제는 담지 않고 현 정부의 성과를 지나치게 강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文정권 남북관계, 功만 다루고 過는 외면

북한의 천안함 폭침을 제대로 다룬 교과서는 8종 가운데 금성과 동아 2종뿐이다. 전국 1893개 고교 가운데 583곳(30.8%)에서 이 교과서로 가르친다. 두 교과서에는 ‘이명박 정부 시기에는 천안함 피격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남북 관계가 갈등 상황에 빠졌고’(금성),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 천안함 피격 사건, 연평도 포격 도발 등으로 개성 공단을 제외한 남북 교류 협력은 중단되었고’(동아) 등 사실관계를 제대로 서술하고 있다. 반면 미래엔·지학사·비상 등 3종은 천안함 피격, 폭침 관련 내용을 교과서에 아예 담지 않았고, 해냄은 ‘천안함 침몰’, 씨마스와 천재교육 교과서는 ‘천안함 사건’으로 두루뭉술하게 서술했다. 북한이 도발 주체라는 것을 명시하지 않은 것이다.

교육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역사적 사실을 사실 그대로 싣지 않는 것은 말 그대로 왜곡”이라고 말한다. 특히 “역사적 사건에 대한 평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데 당대 정권에서 일어난 일을 교과서에 서술하는 것도 큰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 대표적인 예가 남북 관계를 한쪽 측면에서만 서술한 것이다. 8종 한국사 교과서는 모두 2018년 남북 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 등을 남북 화해의 대표적 사례로 소개하는 등 남북 관계를 긍정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악수하는 가로 21㎝, 세로 28㎝ 크기의 사진을 한 페이지 가득 담거나(씨마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서로 손을 잡고 들어올리는 남북 정상회담 사진을 싣고(동아), 판문점에서 대화하며 걷는 사진을 교과서에 서술(비상교육)하고 있다.

이 교과서로 전국 고교생들이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3월부터다. 그런데 그로부터 석 달이 지난 작년 6월 북한이 개성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사건이 벌어져 남북 관계가 경색되었고, 그로부터 다시 석 달 뒤에는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북한에서 사살되면서 남북 관계는 더욱 악화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도 남북 관계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는 큰 요인 가운데 하나다. 현실에서는 남북 간 긴장이 이어지고 있는데도 학생들은 남북 간 장밋빛 평화만 강조한 교과서로 배우고 있는 것이다. 역사 교수 출신인 정경희 의원은 “현 정권에서 일어난 일을 치적으로 삼아 이를 무리하게 교과서에 실으려다 보니 빚어진 현상”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 이전에는 교과서에서 현대사 부분에 현직 대통령에 대한 서술은 취임식과 국정 과제 등을 간략히 서술하는 데 그쳤다. 박근혜 정부 때 만들었다가 폐기된 국정교과서도 ’2012년 12월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됐다. 박근혜 정부는 ‘국민의 행복, 희망의 새 시대’를 표방하며 국정을 시작했다'는 두 문장으로 당시 현직 대통령에 대한 서술을 마무리했다.

현 정부가 강조한 소득 주도 성장도 비슷한 상황이다. 씨마스 교과서에는 “가계의 임금과 소득을 늘리면 소비도 늘어나 경제성장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라며 “경제 민주화를 고민하거나 소득 주도 성장으로 바꾸려는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다”고 서술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소득 주도 성장의 효과가 입증되지 않아 현 정권조차 사실상 폐기했다는 말이 나오는 상황이다. 이명희 공주대 교수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부와 관련된 정책 등을 교과서에 담으면 정치적 논란에 휘말릴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며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교과서에 담으려면 적어도 한 세대(30년)는 지나고 역사적 평가가 내려진 이후여야 한다”고 했다.

고교 역사 교과서 좌편향 논란은 노무현 전 대통령 집권 첫해인 2003년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당시 고교 ‘국사’ 과목에서 ‘한국근현대사’가 선택 과목으로 분리되면서 국사는 국정 체제를 유지하고 근현대사 교과서만 검정(檢定) 체제로 발행했다. 학계에선 논란 여지가 큰 주제들이 다수 포함된 한국근현대사를 검정 교과서로 전환하는 것에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민주화 바람을 타고 관철됐다. 2011년 근현대사와 국사가 합쳐져 ‘한국사’로 바뀐 후에는 교학사 교과서가 보수 사관을 담은 유일한 교과서로 꼽혀 진보·좌파 단체의 채택 거부 운동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후 교학사는 새로운 교육과정을 적용한 검정 교과서 발행을 포기해 현재 사용되는 8종 고교 한국사 교과서 전체가 한쪽으로 치우쳤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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