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경축 열병식 연설중 울먹이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조선중앙TV지난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경축 열병식 연설중 울먹이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조선중앙TV

북한 사정이 심상치 않다. 과연 우리는 북한을 제대로 보고 있는지 의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 집권 세력의 주류 담론은 소위 ‘내재적 접근'으로 북한의 입장과 주장에 서서 보자는 것이다. 군사 일변도였던 선대와 달리 김정은 위원장은 핵과 경제를 동시에 챙기는 병진 노선을 추진했고 이제 핵무기는 완성됐기 때문에 경제 건설에 매진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특히 김정은은 국민과 경제를 챙기고 심지어 ‘계몽 군주'라는 평판까지 나온다. 과연 그는 계몽 군주인가? 정말 민생을 챙기고 경제 건설에 매진하고 있는가? 북한 선전물과 TV쇼 분석이 아닌 실증적 검증이 필요하다.

김정은의 경제 살리기는 스키장, 카지노 등 초호화 리조트 사업에 집중됐고 대동강변 전시용 마천루 건설이 고작이다. 산업을 일으키고 인민 경제를 향상시키는 조치가 아닌 낭비성 사업에 국가 재원을 쏟아붓는 격이다.

지난 10월 당 창건 기념일의 군사 퍼레이드는 내재적 담론에 심각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최근 수년 만에 북한군은 환골탈태했다. 핵 전력이야 알고 있었지만, 놀라운 점은 재래식 전력이다. 북한군의 복장부터 소화기, 기동 차량, 포 전력, 다연장 방사포, 대공미사일, 전차 등 대대적 현대화가 이루어졌다. 북한 군사 퍼레이드 단골이었던 스커드, 노동 미사일 등 구형 장비는 사라지고 대구경 방사포와 최신형 이스칸데르와 북극성 등 고체 연료 미사일로 교체되어 남한 공격용 군사력의 혁신이 이루어졌다. 북한은 핵 전력뿐만 아니라 재래식 전력에도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북한의 최신 전차는 외형상 우리 군의 최신 전차를 방불케 한다. 광학 장비, 반응 장갑(reactive armor), 엔진 등 첨단 전차 장비들은 해외에서 조달했을 것이다. 결국 수십억달러의 천문학적 외화를 들여 북한군의 대대적 현대화를 추진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돈이 많이 드는 재래식 전력 대신 핵을 추진한다는 전제는 틀렸다. 국제 재재로 외환 사정과 경제가 극도로 악화됐지만, 군사력에 대한 투자는 멈추지 않은 셈이다.

지난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북한군 신형 전차. 기존 선군호, 천마호 등과는 전혀 다른 전차로 복합 장갑 등을 장착한 것으로 분석됐다./조선중앙TV 연합뉴스
 
지난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북한군 신형 전차. 기존 선군호, 천마호 등과는 전혀 다른 전차로 복합 장갑 등을 장착한 것으로 분석됐다./조선중앙TV 연합뉴스

김정은의 우선순위는 경제가 아니라 군사력이다. 김정은은 군사 퍼레이드에서 인민들에게 ‘감사의 눈물 없이는 대할 수 없다’며 눈물을 보였지만 악어의 눈물이었던 셈이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 북한 경제는 좋아지고 있는가? 세계은행과 유엔 자료에 따르면, 2007년 이래 북한은 세계 최빈국의 국민소득 평균을 밑돌고 있으며, 그 격차는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 결국 북한이 세계 최빈국이라는 얘기다. 북한 경제는 금년 10% 이상 마이너스 성장할 것이 예상된다. 북한 인구의 56%가 제대로 전기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고, 북한 주민 40%가 식량 부족을 겪고 있다. 설상가상 수해로 쌀 생산이 20~30% 줄어든 것으로 파악된다. 만성적인 식량 부족을 겪는 세계 최빈국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 전략 잠수함, 최신형 전차를 보유하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군사력에 ‘몰빵'하는 독재자를 계몽 군주라고 하는 사람들은 제정신인지 의심스럽다.

 

최근 북한에서 코로나를 핑계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최악의 경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북한 원화가 달러 대비 20% 이상 절상됐다. 경제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외화난에 처해 전주와 주민들이 갖고 있는 외화를 흡수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개입하여 달러 사용을 막고 환율을 절상시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더욱이 북·중 교역이 지난 10월, 전월 대비 99%가 줄어 사실상 중단됐다. 명목상 코로나 방지를 위한 국경 봉쇄지만 외화 유출을 피하기 위해 교역을 아예 중단시킨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바다를 통한 코로나 유입을 막는다는 이유로 어업과 염전까지 통제한다.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도 스스로 차단한다. 관련자 처벌이 잇따른다.

박지원 국정원장조차 김 위원장이 과잉 분노에 비이성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자신의 실정을 철저히 국제 제재와 코로나로 돌리기 위한 포석이지만, 인도적 대재앙이 북한에서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된다. 과거 고난의 강행군 시절 배급 중단으로 굶어 죽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 시절을 거쳐 장마당 시장까지 경험한 인민들은 수령의 비합리적 행동에 반발할 것이다.

김 위원장은 시간은 북한 편이며 “이제 남은 것은 인민이 더는 고생을 모르고 유족하고 문명한 생활을 마음껏 누리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군사력에 의존하는 체제의 전환 없이 그 일은 실현될 수 없을 것이다. 대북 국제 제재는 분명한 효과를 내고 있다. 조바심을 부릴 이유가 없다.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전략적 손실을 지속적으로 부과하는 국제 제재 틀만 건재하다면 분명히 시간은 북한 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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