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여성과 화장품을 다룬 저서 '북한 여성과 코스매틱/남성욱 교수 제공
 
북한 여성과 화장품을 다룬 저서 '북한 여성과 코스매틱/남성욱 교수 제공

북한에서 중국산 화장품이 북한산 화장품보다 못한 불량제품 취급을 받는 반면 한국산 화장품은 가장 인기가 많다는 연구 결과가 공개됐다. 북한 신부들이 결혼 예물로 받는 화장품과 관련, “한국산을 받으면 시집 잘 갔다” “북한산을 받으면 보통이네” “중국산을 받으면 고생문이 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는 것이다. 품질 좋은 한국산 화장품이 북한에서 큰 인기를 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중국 화장품이 북한산보다 낮은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연구진(남성욱·채수란·이가영)은 북한 화장품의 현 주소를 파악하기 위해 세계 최초로 북한산 화장품 64개에 대한 성분 분석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북한 여성과 코스메틱’(한울)에 담았다. 2017년 한글판으로 출간된 내용을 업그레이드해 영문판으로도 출간했다. 영국의 유명한 출판사(Macmillian Palgrave)가 발간했다.

금강산 개성고려인삼 화장품 세트. /남성욱 교수 제공
 
금강산 개성고려인삼 화장품 세트. /남성욱 교수 제공

남성욱 교수 연구팀이 확보한 64개 북한 화장품은 2016년 6월부터 2017년 1월까지 8개월간 중국인과 평양을 방문한 미국 국적 관계자 등의 도움을 받아 평양 및 신의주에서 구매한 것들이다. 기초 화장품이 47개, 페이스 팩 2개, 클렌징 폼 3개, 샴푸·린스 2개, 비누 3개, 치약 1개, 립글로스 1개, 립스틱 1개, 콤팩트 1개, 향수 3개다. 생산 회사별로는 평양화장품공장 10개, 묘향천호합작회사 17개, 봄향기합작회사 34개, 신의주화장품공장 1개, 평양향료공장 1개, 삼건무역회사 1개 제품이다.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소에 이들 제품의 분석을 의뢰했다.

북한 묘향천호합작회사에서 생산한 미래 화장품 세트. /남성욱 교수 제공
 
북한 묘향천호합작회사에서 생산한 미래 화장품 세트. /남성욱 교수 제공

동시에 한국에 거주하는 탈북 여성 167명을 대상으로 국내 제품과 비교 사용하면서 평가를 실시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 조선중앙통신, 여성 대상 기관 잡지인 ‘조선녀성’ 등도 분석했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화장품 생산 관련 발언과 의도, 현지지도 동향을 통해 정책 의도를 파악하고자 했다.

북한 화장품/남성욱 교수 제공
 
북한 화장품/남성욱 교수 제공

성분 분석 결과 북한 화장품의 전체적인 제조 기술은 한국의 1970~1980년대 수준으로 파악됐다. 중공업 위주의 발전을 추구하는 사회주의 체제의 특성상 경공업인 화장품 생산은 많은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고. 그 결과 북한의 화장품 제조 기술은 상당히 낙후된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형상으로는 한국과 외국 화장품 용기를 복제해 언뜻 세련돼 보이지만, 낙후된 금형기술 탓에 펌프 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등 전반적으로 조악한 수준이었다. 뚜껑이 용기에 잘 맞물리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액체 제품의 경우 노즐과 스프레이가 원만하게 작동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보관이나 이동 시 느슨하게 잠긴 뚜껑이나 용기가 자동으로 열려 내용물이 새어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북한 묘향천호합작회사에서 생산한 '미래' 화장품 세트. /남성욱 교수 제공
 
북한 묘향천호합작회사에서 생산한 '미래' 화장품 세트. /남성욱 교수 제공

제품의 성분 표기 역시 매우 미흡했다. 아예 성분 표기가 없는 제품도 있었고, 표기됐다 해도 성분 함유량과 상관없이 두서없이 나열된 경우가 많았다. 남성욱 교수는 “북한은 6차례의 핵실험과 2번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지만 화장품 용기의 압착 기술이 부실해 로션이나 스킨이 일정하게 분사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많은 점에서 부족하지만 북한이 최근 들어 점차 상류층이 아닌 일반 대중을 겨냥한 색조 화장품을 비롯해 마스크 팩 등 보조 화장품까지 생산하고 있는 것은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추세라고 연구진은 평가했다. 연구에 따르면 전통적인 여성상을 선호하는 북한의 보수적 분위기상 최근까지도 화려하고 색조감을 살리는 화장 문화는 제대로 발전하지 못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채수란 고려대 아시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 연구원은 “북한은 엄숙하고 경직된 사회 분위기를 반영해 색조 화장품의 개발은 아직 초보 단계”라며 “현재까지 기초와 색조 화장품 모두 북한이 자체적으로 완전하게 제조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했다. 색조화장품 개발은 이제 걸음마 단계다. 제조 기술도 부족해 원료는 주로 중국이나 유럽에서 수입하고 있고, 최근에는 중국에 수출된 한국산 원재료를 간접 수입해서 사용한다. 과거에는 일본 제품이 인기가 있었으나 값이 비싸 서민들은 접근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최근에는 한국 드라마의 영향으로 기초·색조 화장품 모두 한국 제품의 인기가 높지만 당국에서 수입금지 품목으로 막아 놓아 상인들이 용기에 적힌 한글 및 영어 브랜드 이름을 긁어 지운 뒤 유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문 브랜드명을 가진 한국 화장품의 경우 외국 제품으로 속여 유통시키는 경우도 있다.

지역에 따라 북한 여성들의 화장 스타일도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앞동네'로 불리는 평양의 경우 주민 절대 다수가 중산층 이상이라 옷차림과 화장이 모두 은은하고 고급스럽다. 반면 ‘뒷동네'인 청진, 회령 등의 북·중 접경 지역은 중국의 영향을 받아 옷차림새가 화려하고 화장을 인위적으로 진하게 한다. 북한 여성들은 화장술에 관해 엄마나 친인척 언니 혹은 주변 친구들이 화장한 것을 보고 배우거나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 연예인의 화장법과 스타일링을 모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 화장품의 4대 브랜드는 평양화장품공장에서 생산하는 ‘은하수’, 봄향기합작회사에서 생산하는 ‘봄향기’와 ‘금강산’, 묘향천호합작회사에서 생산하는 ‘미래’다. 이 가운데 고려인삼의 추출물을 주원료로 하고 수십 가지의 한방 약재를 배합해 만든 ‘봄향기’가 가장 유명하다. ‘봄향기’라는 상표명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지었다. ‘봄향기’는 국제발명전시회에 두 번이나 입상하고 세계 20여개국에 수출되는 북한의 효자 수출품으로 알려졌다.

북한 여성들이 결혼 혼수로 선호하는 제품은 봄향기합작회사에서 생산하는 개성고려인삼 계열의 화장품 세트다. 평양에선 인민반장에게 결혼 사실을 알리면 화장품 쿠폰을 발급받아 준다. 상점에 이를 제시하면 화장품 세트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밖에도 연구팀에 따르면 북한은 화장품에 화학 재료보다 천연 재료를 많이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4대 치료용 유황 갯벌인 평안남도 온천군 광량만의 자연퇴적 유황갯벌을 원료로 한 ‘광량’이라는 화장품이 가장 대표적이다. 광량만의 유황 갯벌은 피부 미용에 탁월한 효과가 있고 각종 피부 트러블에 좋아 탈모 방지 샴푸, 비누, 팩 등의 다양한 제품에 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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