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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P철책, 454차례 뚫릴 뻔했다...‘과학화 경계 시스템’ 툭하면 고장
조선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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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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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전 경기도 연천지역 최북단 접경지역 GOP(일반전초) 철책에서 장병들이 철책 정밀점검을 하며 경계작전을 펼치고 있다./조선일보 DB
 
24일 오전 경기도 연천지역 최북단 접경지역 GOP(일반전초) 철책에서 장병들이 철책 정밀점검을 하며 경계작전을 펼치고 있다./조선일보 DB

지난 3일 강원도 최전방 지역에서 북한 주민 A씨가 GOP(일반전초) 철책을 넘어와 14시간 동안 남측 지역을 활보하는 일이 벌어졌다. 우리 군(軍) 당국은 A씨가 철책을 넘는 것을 열상감시장비(TOD)를 통해 탐지하고 있었지만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철책에 설치된 동작 감시 센서도 작동하지 않았다. 군이 “사람 눈은 속여도 장비는 못 속인다”고 자랑해온 과학화 경계 시스템이 무력화한 것이다. 군은 평소 전방 지역 과학화 경계 시스템이 ‘물샐틈없다’고 강조해 왔다.

작년 정경두 당시 국방장관은 전방 지역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퍼졌을 때, 감염된 북한 멧돼지가 철책을 뚫고 남으로 넘어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2018년 9·19 군사합의를 통해 남북 양측이 GP(감시소초)에서 철수하기로 했을 때도 군은 과학화 경계 시스템으로 감시·경계 공백을 메우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 군의 과학화 경계 역량에 대한 의문이 군사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2426억원 도입해 구축했지만 北 주민에게 뚫려

우리 군이 운용 중인 과학화 경계 시스템은 최전방 지역 GOP 등에 설치된 감시·감지·통제 시스템을 통칭하는 말이다. 철책 위에 근거리·중거리 카메라를 설치해 북한군의 예상 침투로와 철책 취약 지역을 감시하고, 철책에 움직임 감지 센서 등을 부착해 적의 절단이나 월책 등을 감시하는 것이다. 철책에 설치된 경계 장비는 소초 등과 연동돼 있어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다.

지난 3일 강원도 최전방 지역에서 북한 주민 A씨가 GOP 철책을 넘어와 14시간 동안 남측 지역을 활보했다. 우리 군 당국이 “물샐틈없다”고 했던 전방 지역 과학화 경계 시스템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사진은 DMZ에서 남방한계선 철책의 과학화 경계 시설물을 점검하는 우리 군의 모습. /연합뉴스
 
지난 3일 강원도 최전방 지역에서 북한 주민 A씨가 GOP 철책을 넘어와 14시간 동안 남측 지역을 활보했다. 우리 군 당국이 “물샐틈없다”고 했던 전방 지역 과학화 경계 시스템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사진은 DMZ에서 남방한계선 철책의 과학화 경계 시설물을 점검하는 우리 군의 모습. /연합뉴스

국민의힘 이채익 의원실에 따르면 우리 군은 과학화 경계 시스템 도입에 2426억원을 투입했다. 이 가운데 GOP 철책은 2015~2016년 약 300㎞ 구간에 1501억원을 투입해 구축했다. 2006년 한 전방 사단에서 시범 도입한 후 전방 전 부대로 확대한 것이다. 초병의 눈 대신 과학 장비를 통해 휴전선을 24시간 감시한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3일 발생한 북한 주민 월책 때 과학화 경계 시스템은 무용지물이었다. 원거리·근거리 카메라는 현장 상황을 담지 못했고 철책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센서도 작동하지 않았다. 군은 TOD 장비를 통해 북 주민을 육안으로 파악하고 병력을 출동시켰지만 이미 그는 철책을 넘은 뒤였다.

이번에 북한 주민이 월책한 22사단은 지난 2012년 이른바 ‘노크 귀순’이 발생한 지역이다. 군은 노크 귀순 사건 후 경계 강화 대책의 하나로 과학화 경계 시스템을 조기 도입했다. 하지만 그때와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GOP 철책 시스템 공식 고장만 454건… 실제론 수만 건 추산

기계도 오류나 고장이 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군의 과학화 경계 시스템은 안정성에 의구심을 낳을 정도로 고장이 잦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육군 자료에 따르면, 과학화 경계 시스템 구축이 완료된 2016년 이후 올해 6월까지 GOP 철책 지역에서 총 454건의 장비 고장이 발생했다. 이 가운데 철책에 설치된 감지 센서 관련 고장이 219건으로 가장 많았다. 경계 장비 통제 시스템이 고장 난 경우도 있었다.

군사 전문가들은 실제 고장 건수가 군의 공식 통계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도 “통계에 잡히지 않은 잔고장 등을 더하면 수만 건의 고장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실제로 해병대는 2015~2020년 장비 작동 오류 등 과학화 경계 시스템 고장이 2749건으로 집계됐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군 관계자는 “육군의 GOP 철책이 해병대 담당 구역보다 현저히 넓은 만큼 전체 고장 건수도 훨씬 많을 것”이라고 했다.

과학화 경계 시스템의 구성
 
과학화 경계 시스템의 구성

군에선 과학화 경계 장비의 수명을 통상 5~7년으로 잡고 있다. 이에 따라 이미 노후화가 시작됐을 가능성이 높다. 육군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근거리 카메라의 경우 ‘노크 귀순’ 사건 직후인 2012년에 처음으로 실전 배치돼 노후화 현상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카메라 등 감시 장비 부품은 50% 이상이 단종(斷種)된 상태다.

과학화 경계 시스템 유지·보수 예산도 매년 급증하고 있다. 무상 수리 기간이 끝난 2018년 13억2000만원이던 관련 예산은 내년 31억3000만원으로 배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과학화 경계 시스템이 태풍·수해 등 자연재해에 취약한 점도 문제다. 평균 1~2일 걸렸던 고장 수리 기간은 2019년 51.2일로 늘어났는데 대부분 태풍 피해 때문이었다. 올해도 수해로 전방 지역 철책 14㎞가 손상을 입었지만 군은 두 달 넘게 복구하지 못했다.

◇시스템 도입 어쩔 수 없다지만… 맹신으로 경계 실패

인구 감소로 인한 병력 감소와 장병들의 경계 근무 피로감 등을 감안하면 과학화 경계 시스템 도입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실제로 과학화 경계 장비 도입으로 장병들의 경계 근무가 줄면서 장병들의 전체 근무 시간이 소대별로는 43%, 중대·대대급에서는 20% 감축됐다는 통계가 있다.

하지만 과학화 경계 장비 보급에도 경계 실패 사례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지난 7월 탈북민 김모씨가 인천시 강화도 해안 철책 밑 배수로를 통해 월북했지만, 군은 북한이 김씨의 월북 사실을 보도할 때까지 몰랐다. 올해 3월에는 제주 해군기지에 민간인이 철조망을 뜯고 무단 침입해 1시간 가까이 기지 내부를 돌아다녔다. 당시 철조망 인근 감시 카메라에는 민간인이 철망을 뜯는 장면이 찍혀 있었지만 장병들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과학화 경계 시스템을 맹신했거나, 장병들의 안일한 모니터링이 불러온 경계 실패였다.

거꾸로 철책에 설치된 동작 감시 센서가 과민하게 작동하는 것은 군의 골칫거리다. 강한 바람이 불거나 동물이 철책을 살짝 건드려도 경보음이 울리는 경우가 많다. 이런 과민 작동 때문에 장병들은 실제 상황이 발생해도 무감각하게 대응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군 관계자는 “부대에 따라서 오작동 때문에 센서의 민감도를 둔감하게 설정해놓은 곳도 있다”고 했다.

과학화 경계 시스템의 오류도 문제다. 이채익 의원에 따르면, 2016년 이후 센서가 작동해 1만2190차례 경보음이 울렸는데 이 중 3290(27%)번은 시스템 오류에 따른 오작동이었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전문연구위원은 “과학화 경계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과 함께 유지·보수 등 관리 대책이 철저히 이루어져야 한다”며 “시스템 구축 후 사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경계 실패로 빈번하게 이어진다”고 했다.

[과학화 경계 시스템 장기계획]

감시 카메라가 포착하면 무인기 띄워 대응… 수풀 투과 레이저 2035년까지 배치하기로

군은 과학화 경계 시스템에 대한 여러 문제가 지적되고 있지만, 전방 지역 부대 재배치 등에 맞춰 후속 사업을 계속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병력 감축으로 인해 12개 사단이 지키던 전방 지역 300㎞ 철책을 10개 사단이 지켜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과학화 경계 시스템에 대한 의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단기적으로 감시 거리가 향상된 근거리·중거리 카메라를 도입할 것이라고 군은 밝혔다. 배수로와 월북 루트, GOP(일반전초)와 민간인 통제선 사이에도 감시 장비를 추가 설치할 예정이라고 했다. 군 관계자는 “현재 탐지율 90%대인 철책 센서 등의 성능을 개량해 탐지율을 95%대로 올릴 것”이라고 했다.

군은 장기적으로 광역 감시 카메라를 도입하고, 무인기 대응 체계도 구축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감시 카메라를 통해 침투 의심 사례가 감지되면 무인기를 띄워 대응하는 방식이다. 군은 과학화 경계 시스템의 맹점으로 지적받는 지형 장애물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안도 마련했다고 했다. 군은 “수풀을 투과하는 레이더를 도입해 지형지물에 은폐·엄폐한 적도 잡아낼 것”이라고 했다. 철책의 동작 감시 센서에는 열 감지 기능을 추가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이렇게 되면 강한 바람 등에 철책 센서가 울리는 일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미래형 과학화 경계 장비가 구축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군은 수풀 투과 레이더의 경우 기술 개발을 통해 2035년까지 야전(野戰)에 배치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개발이 언제 완료될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또 잦은 오류와 고장률을 낮추는 것도 관건이다. 군사 전문가들은 “과학화 경계 시스템을 구축해도, 결국 대응은 사람이 하는 것”이라며 “이번 월책 사건처럼 대응 시스템의 허점을 보완하지 못하면 경계 시스템도 한계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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