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한반도 태스크포스(TF) 방미대표단 자격으로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 중인 송영길(국회 외교통일위원장)·윤건영·김한정 의원은 17일(현지 시각)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을 면담해 “바이든 정부도 트럼프 정부의 대북 관여 정책을 지속해달라”는 취지로 말하면서 적절성 논란이 일고 있다.

송 위원장은 이날 비건 부장관에게 “트럼프 행정부가 보여준 대북 관여 정책은 고립된 북한을 국제사회로 끌어낸 첫발”이라며 “차기 미국 행정부에서도 이러한 노력을 지속하며, 6·15 남북 정상회담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이정표가 되어 한국과 미국 모두 어느 정부라도 상관없이 남·북·미 관계의 발전을 이끌어 나가기 바란다”고 말했다. 송 위원장의 발언에 “비건 부장관 또한 공감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정책을 조 바이든 행정부가 지속하기를 바란다고 말한 것이 과연 ‘대선 이후 의원 외교’란 방미 목적에 부합하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사람’인 비건은 내년 1월 20일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이 이끄는 민주당 행정부가 출범하면 국무부를 떠날 것으로 예상된다.

송 위원장은 또 비건에게 “북한과 대화하는 데 있어 ‘톱다운(Top down·하향식)’과 ‘보텀업(bottom up·상향식)’ 두 방식 간 상호 조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김대중 정부 청와대 1부속실장을 지낸 김한정 의원도 비건에게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성공과 성과의 배경에는 현대그룹의 대북 투자라는 ‘비즈니스’적인 요소가 기여했던 것에도 유의해야 할 것”이라며 “지금은 핵개발에 따른 엄격한 대북 제재가 존재하기에 비핵화 협상에 북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함께 ‘당근’을 주는 방식을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바이든 당선인은 그간 트럼프의 톱다운 대북 외교가 북한 정권에 정당성만 부여해줬다고 여러 차례 비판했다. 지난달 마지막 대선 TV 토론에서도 “핵 능력을 축소한다고 동의하는 조건”으로만 김정은을 만나겠다고 했다. 또 북한을 협상장으로 불러내기 위해 경제적 이득을 줘야 한다는 접근법에 대해 바이든의 참모들은 공공연히 반대하고 있다.

 

국무장관 또는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후보로 거론되는 토니 블링컨 전 국무부 부장관은 지난 9월 미 CBS 방송 인터뷰에서 “북한을 쥐어짜는 진정한 경제적 압박을 구축해서 협상 테이블로 오게 하려면 한국·일본 같은 동맹과 긴밀히 협력하며 중국에 압력을 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협상장에 나오지 않고는 배길 수 없도록 더 강력한 대북 제재를 시행하겠다는 뜻이다.

사정이 이렇지만 정부·여당은 트럼프 행정부 인사와 잇따라 접촉하면서 ‘대북 유화정책 유지’ 메시지를 내고 있다. 여당 의원들의 방미에 앞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워싱턴DC에서 트럼프 행정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만났다. 이 같은 ‘친(親)트럼프 행보’에 대해 야당은 “바이든 측을 자극하면서 역효과만 낼 것”이라고 경고했다. 외교부 차관 출신인 국민의힘 조태용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시점에서 우리 방미단이 바이든 측의 핵심 인사들을 만날 수도 없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북 정책을 지속하자는 식의 메시지를 발신하는 건 슬기롭지 못한 외교”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여당 측의 ‘트럼프 집착’에는 크게 두 가지 배경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먼저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메시지 선점 효과를 노렸다는 분석이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미 정권 교체기에 우리 측이 먼저 ‘톱다운 방식의 대북협상이 효과적’이라는 식으로 애드벌룬을 띄우는 것”이라고 했다. 국내 정치용 목적이 있다는 시각도 있다. 조 의원은 “대북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바이든 측과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국내에 알리기 위해 무리한 방미가 이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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