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이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의 승리로 마무리되면서, 미국의 한반도 정책 방향도 일정 부분 변화가 불가피하다. 바이든 당선인은 줄곧 김정은을 “폭력배(thug)”라고 불러왔다. 이에 발끈한 북한은 작년 11월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미친 개(바이든)는 한시바삐 몽둥이로 때려 잡아야 한다”고 논평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시절 ‘러브레터’를 주고받던 미·북 정상이 ‘폭력배’와 ‘미친 개’의 관계로 극적 변화를 맞게 됐다.

'Vice' 지워주세요 - 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부인 질 여사가“(질 바이든) 박사와 바이든 대통령이 여기 산다”고 적은 팻말을 들고 있다. 원래 팻말엔‘부통령(Vice President)’이라고 적혀 있으나, 질 여사가 한 손으로 'Vice(부·副를 의미)'를 가려‘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이 사진을 남편의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7일(현지 시각) 올렸다. /질 바이든 트위터
'Vice' 지워주세요 - 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부인 질 여사가“(질 바이든) 박사와 바이든 대통령이 여기 산다”고 적은 팻말을 들고 있다. 원래 팻말엔‘부통령(Vice President)’이라고 적혀 있으나, 질 여사가 한 손으로 'Vice(부·副를 의미)'를 가려‘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이 사진을 남편의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7일(현지 시각) 올렸다. /질 바이든 트위터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며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든 미·북 관계가 지속되길 바라고 있다. 그러나 바이든은 미 외교협회(CFR)의 대북 정책 문답에서 “트럼프 덕분에 살인적 독재자인 김정은은 더 이상 세계 무대에서 고립된, 버림받은 자가 아니게 됐다”고 비판했었다. 바이든은 또 지난달 22일(현지 시각) 마지막 대선 TV토론에서 “'핵 능력을 축소한다고 동의하는 조건'으로만 김정은과 만나겠다”고 했다. 트럼프가 했던 ‘톱다운’(Top down· 하향식) 대북 외교는 지양하고, 북한의 인권 문제도 묵인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구체적 비핵화 진전과 상응하지 않는 대북 제재 해제에 회의적인 것도 문재인 정부의 입장과 다르다.

그러면서도 바이든은 북한을 ‘무시’하며 북한의 변화를 마냥 기다렸던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보다는 훨씬 적극적으로 대북 협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든은 CFR 문답에서 “(대북) 외교는 중요하며 외교 실행을 위한 전략, 절차, 유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면서 “대통령으로서 나는 우리 협상단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고도 했다. 자신이 직접 전면에 나서지는 않겠지만, ‘실무 협상→고위급 협상→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전통적 ‘바텀업(Bottom up·상향식)’ 외교로 복귀할 것이란 뜻이다.

바이든 진영은 이 과정에서 북한 핵 문제의 ‘다자적(multilateral) 접근법'과 ‘단계적 해결’을 중시하고 있다. 바이든은 CFR 문답에서 “비핵화된 북한이란 공동의 목표를 진전시키기 위해 동맹 및 중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과 조율된 노력에 시동을 걸 것”이라고 했다. 특히 이들은 오바마 행정부 시절 이란과 맺었던 핵 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모델을 ‘모범’으로 보고 있다. 이 합의에는 안보리 상임이사국 5국(미·영·프·중·러)과 독일 등 이른바 ‘P5+1’이 모두 참여했다.

 

바이든의 최측근이며 국가안보보좌관 혹은 국무장관 후보로 거론되는 토니 블링컨 전 국무부 부장관은 2018년 뉴욕타임스에 “북한과의 핵 합의에 최고의 모델은 이란"이란 기고를 했었다. 블링컨 전 부장관은 이 기고문에서 ①모든 (핵)프로그램의 공개 ②국제사찰단 감시하의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 인프라 동결 ③(핵)탄두·미사일의 일부 폐기와 경제 제재의 제한적 해제 맞교환 등을 미·북 간에 고려해 볼 만한 잠정적 합의 요소로 꼽았다. 이런 합의가 “상세한 단계적 로드맵을 포함한 보다 포괄적 합의안을 협상할 시간을 벌어줄 것”이란 주장이다. 블링컨은 또 “(우라늄) 광산, (정련) 공장, 원심분리기, 농축·재처리 시설 등의 핵 공급망 전체를 아우르는 모니터링 시스템”도 이란 핵 합의의 장점이라고 했다.

바이든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민주주의 국가 간의 연대 구축을 강조하며, 동맹도 강화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한·미 관계에서도 과도한 방위비 분담 인상을 요구하지 않고, 주한미군을 중시하는 전통적 동맹으로 돌아갈 전망이다. 바이든의 측근으로 국무장관 후보에 거론되는 크리스 쿤스 델라웨어주 상원의원은 지난 7월 트럼프 대통령에게 “주한미군은 북·중·러에서 미국을 방어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다"며 "감축 계획을 중단하라”고 촉구하는 서한을 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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