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세계를 울린 오준 주(駐)유엔 대사(大使)의 명연설 ‘북한 주민은 아무나가 아니다’와 ‘이제 그만하세요’가 국내 정치권과 외교가(街)에서 다시 화제다.

정부가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불참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다. 정부는 임기 내내 현행법에 근거한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북한인권대사)’를 공석(空席)으로 방치하고, 북한의 해수부 총살에도 미온적 대응을 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오준 대사의 연설은 지난 2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서도 등장했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국감에서 오준 대사 연설 영상을 틀고 “강경화 장관님 보시는 저 화면은 6년 전 유엔 안보리에 북한 인권결의안이 처음으로 상정됐을 때 우리 유엔 대사가 한 명연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준 대사는) 그곳에서 ‘북한 주민은 아무나(anybodies)가 아니다’ ‘우리가 똑같이 인간다운 삶을 살 자격이 있는 북한 주민을 위해 옳은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60여 국 대표 앞에서 연설했다”고 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왼쪽)이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의 외교부, 한국국제협력단, 한국국제교류재단, 재외동포재단 등 산하기관에 대한 종합감사에 출석해 이태호 2차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20.10.26 국회사진기자단
 
강경화 외교부 장관(왼쪽)이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의 외교부, 한국국제협력단, 한국국제교류재단, 재외동포재단 등 산하기관에 대한 종합감사에 출석해 이태호 2차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20.10.26 국회사진기자단

태 의원은 “장관님도 기억이 생생하실 것”이라며 “이건 평양에도 보고될 정도로 유엔에서 명연설로 기억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6년이 지난 지금 우리 국민이 북한에 피살됐는데도 대한민국의 모습을 국제사회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정말 참담하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캐나다 등 서방 나라들이 모여 북한인권결의안 작성회의를 하고 여기에 우리 나라 초청을 했는데, 우리는 불참 통보를 했다”면서 “왜 불참했느냐”고 물었다.

강 장관은 “문안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할 것”이라며 “초청에 바로 응하기 보다는 이들이 주도하는 이유 등에 대해 긴밀히 소통하고 우리 의견을 전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에 태 의원은 “우리 국민의 상황이 이렇고 다른 나라는 두 팔을 벌리며 인권 결의안에 대해 문안을 작성하는데, 정작 우리는 참여하지 않는다? 왜 그러는지 되묻고 싶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6년 전 유엔에서 저 당당했던 대한민국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면서 “외교부 장관의 존재 가치를 묻고 싶다”고 했다.

 

태 의원은 “오준 대사가 유엔에서 또 북한에 대해 영어로 말하다가 한국말로 ‘이젠 그만하세요’라고 말했고, 이 한마디에 북한은 침묵하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면서 “저도 이 자리에서 한 마디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장관님 이젠 그만하시죠. (해수부 공무원 유족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고, 이 비통한 사건을 위해 나서 주세요. 절절히 호소합니다”고 말했다. 강 장관은 이에 답변은 하진 않았다. 고개를 살짝 앞으로 뺐다가 뒤로 당기는 제스처를 보였다.

2016년 오준 당시 유엔 주재 한국 대사가 발언하는 장면. /YTN화면 캡처
2016년 오준 당시 유엔 주재 한국 대사가 발언하는 장면. /YTN화면 캡처
2016년 오준 당시 유엔 주재 한국 대사가 발언하는 장면. /YTN화면 캡처
2016년 오준 당시 유엔 주재 한국 대사가 발언하는 장면. /YTN화면 캡처
2016년 오준 당시 유엔 주재 한국 대사가 발언하는 장면. /YTN화면 캡처
2016년 오준 당시 유엔 주재 한국 대사가 발언하는 장면. /YTN화면 캡처

2014년 ‘북한은 아무나가 아니다’는 연설을 했던 오준 당시 대사는 2년 뒤 2016년 안보리에서 대북 제재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을 때는 영어 연설로 북한의 추가 무력 도발 중단을 촉구하다가 한국어로 “이제 그만 하세요”라고 말해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유엔에선 영어·프랑스어·아랍어 등 6개 공용어만 사용해 발언해야 하지만 북한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한 대목만 우리말로 표현하는 이례적 방법을 택했던 것이다.

북한 조선중앙TV가 10월10일 오전 0시부터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을 녹화 중계방송하고 있다. /조선중앙TV 뉴시스
 
북한 조선중앙TV가 10월10일 오전 0시부터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을 녹화 중계방송하고 있다. /조선중앙TV 뉴시스

외교 소식통은 “불과 4년전만해도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도발 행위에 ‘이제 그만하라’며 제 할말을 하고 국제사회의 전폭지지를 받던 한국이 어느새 우리 국민을 총살한 북한의 만행에도 항의 한번 제대로 못하는 나라가 됐다”고 말했다.

또다른 소식통은 “한국은 북한 주민의 인권 유린에 가장 가슴 아파해야 하고 개선을 위해 앞장 설 나라”라면서 “하지만 현재 정부는 다른 나라가 북한인권결의안을 작성하는 모습을 마치 남일처럼 멀리서 쳐다만 보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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