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의 공무원 이모씨 사살 사건과 관련해 서욱 국방부 장관이 “시신을 불태웠다는 발표는 추정을 너무 단도직입적으로, 단언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첩보를 종합해 가면서 그림을 맞춰가고 있었는데 언론에 나오면서 급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에게 심려를 끼쳤다”고 사과까지 했다.

이씨 사살 이틀 뒤 국방부는 “다양한 첩보를 정밀 분석한 결과, 북한이 우리 국민에게 총격을 가하고 시신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음을 확인했다”고 했다. 국방장관 말처럼 언론이 설익은 상태에서 보도한 것이 아니다. 국방부가 보도자료까지 내면서 공식 발표한 내용이다. “방독면을 착용한 군인들이 시신에 기름을 부었다”는 등 상세한 장면까지 묘사했다. 서 장관부터 국회에서 시신 소각을 수차례 언급하며 “만행을 확인했다”고 했다. 국방부 발표는 한⋅미 정보 자산 등 확실한 증거를 바탕으로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 ‘추정을 급히 발표한 것’이라고 발을 뺀다.

확신에 차 있던 군이 ‘추정’이라고 꼬리 내리는 이유가 뭐겠나. ‘사살은 했지만 소각은 안 했다’는 북한 주장과 입을 맞추려는 것이다. 북한은 우리 군 발표 직후 통지문을 보내 “총격을 가한 것은 맞지만 시신을 불태우지 않았다”고 했다. 시신은 못 찾았고 불태운 것은 부유물이라고 했다.

 

북한이 보내온 통지문은 상당 부분 엉터리로 드러났다. 북은 통지문에서 “정장 결심으로 이씨에게 사격을 가했다”고 했다. 그러나 현장 지휘관이 상부의 사격 지시를 못 믿겠다는 듯이 재확인한 감청 내용이 나오면서 허위로 밝혀졌다. “80m 거리에서 신분 확인을 요구했지만 제대로 답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북은 이씨의 자세한 신원을 파악하고 있었다. 시신 소각 사실 역시 자신들의 야만적인 행태에 대한 국제적 지탄을 우려해 부인했을 가능성이 크다. 북은 엉터리 통지문을 보내놓고 우리의 공동 조사 요구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

군은 구할 수 있었던 우리 국민을 ‘설마’하며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 그래 놓고 북이 시신을 소각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하자 장단을 맞추느라 이씨 시신을 찾는 척하는 해상 수색 쇼를 했다. 그것만으로도 북 입장을 충분히 세워주지 못했다는 것인지 자신들이 했던 발표까지 뒤집으며 대국민 사과를 한다. 도대체 대한민국 군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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