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은 근자에 국민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두 가지 발언을 했다. 하나는 국회의원의 낙천-낙선을 벌이고 있는 시민운동의 초법성(초법성)을 긍정하는 발언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 김정일을 평가하는 지도자론(론)이다. 더구나 이 발언들은 정책에 관한 것이 아니고 국정을 이끄는 대통령의 판단에 관한 것이어서 상황에 따라서는 심각한 국면을 초래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다.

김 대통령은 “시민단체의 선거활동보장 요구는 법으로 규제할 수 없다. 4·19나 6·10항쟁도 당시 실정법위반이었으나 국민에 의해 정당성을 인정받았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나중에 시민운동이 실정법을 어겨도 괜찮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대통령의 인식의 근저에는 오늘의 위법이 내일 정당화될 수 있고 따라서 옳지 않은 법이라면 저항할 수 있다는 논리가 깔려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지금 우리 사회는 법이 엄격히 지배하는 사회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법이 방기되고 있다. 지난 1월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어느 외국기자가 던진 질문은 우리의 아픈 곳을 찔렀다. 불법낙태의 만연, 교통질서의 실종 그리고 범법자들에 대한 사면 등등 한국사회는 불법투성이라는 그의 지적은 어쩌면 사회지도층의 법의식 마비를 꼬집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정형근(정형근) 의원 체포기도 사건도 따지고 보면 법이 통하지 않는 우리 풍토의 반영이다. 사람들은 정 의원이 수차례 소환에 불응함으로써 법의 절차를 어긴 것보다는 그를 체포하려는 권력적 작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법의 집행을 존재이유로 삼아야 하는 검찰이 과연 그 정신에 따라 처신해왔는가를 반문하고 있는 국민들은 오늘따라 법의 집행을 신주단지처럼 내세우는 검찰에서 ‘양치는 소년’의 몰골을 떠올릴 뿐이다. 어쩌면 김대통령의 초법적 언급은 결국 위로는 대통령으로부터 아래는 일반시민에 이르기까지 ‘법 우습게 알기’풍조의 만연을 반영하는 한 사례인지도 모른다.

김 대통령이 김정일을 가리켜 “지도자로서의 판단력과 식견을 상당히 갖추고 있는”인물이라고 한 발언은 많은 국민들을 경악케 하고 있다. 그것은 도대체 김 대통령이 무슨 자료와 정보를 근거로 우리를 극렬하게 적대하고 있는 집단의 최고권력자에게 국민의 일반인식과는 너무나 거리가 있는 평가를 내려주는지에 대한 어안벙벙 그 자체다. 6·25전쟁은 김일성의 범죄라고 치더라도 김정일이 정권을 승계한 뒤 북한땅에서 벌어진 기아와 아사, 독재와 인권탄압, 대량살상무기 제조와 수출, 그리고 KAL기 폭파 등 남쪽에 대한 끊임없는 무장테러와 대화거부 등을 김 대통령은 ‘판단력과 식견있는 지도자’의 치적(?)이라고 본다는 것인지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논자(논자)들은 김 대통령의 이 발언을 문제삼기를 꺼려왔던 것 같다. 틀림없이 권력쪽에서 색깔론을 들고 나오며 ‘김대중 색칠하기’로 매도할 것이 예상돼서다. 그러나 문제의 원인제공자는 대통령 자신이다.

김정일과의 대화 외에는 남북문제를 풀어갈 다른 길이 없다는 상황판단에는 이견이 없다. 그런데 무슨 ‘좋게 보일 일’이 있었는지 김정일을 식견있는 지도자로 격상시킨 부분은 분명 안 해도 좋을 말이었고, 지난 반세기에 심어진 국민감정과 일반인식을 고려한다면 더더욱 방만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남쪽의 식견있는 사람들은 김 대통령이 부디 말을 아끼고 또 해야 할 말이라도 신중을 기해 국민정서의 중간쯤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랄 것이다. 그것은 집권 2년에 자신감이 생겼는지 아니면 안이함에 빠졌는지, 대통령이 모든 문제나 쟁점에 너무 자주 자신의 속단과 해박함을 펴보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총선에 임해 한 의석이라도 더 확보하려는 김 대통령의 무소불위식 조급함이 일반국민에까지 느껴지는 상황에서 그의 발언과 언급이 너무 종횡무진하지 않기를 바라는 뜻에서도 그렇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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