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부 공무원 이모씨가 서해에서 실종된 당일(9월 21일) 북한군이 국제상선통신망을 이용해 이씨를 수색 중인 우리 측에 “영해를 침범하지 말라”는 경고 통신을 수차례 했던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군 통신선은 가동하지 않았지만, 국제상선통신망을 통해 남북의 의사소통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측은 남북 간 통신망이 모두 끊겼다며 이씨 수색·구조에 협조해 달라는 요청을 하지 않았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이씨 피살 엿새 뒤인 지난달 28일 “이번 사건에서 가장 아쉽게 부각되는 것은 남북 간의 군사통신선이 막혀 있는 현실”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씨 실종 직후부터 북한과의 통신이 가능했고, 이씨를 구할 시간적 여유가 충분했는데도 군이 안이하게 대응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석종 해군참모총장, 이종호 해군작전사령관은 이날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같이 밝혔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이 부 총장에게 “지난달 21일 실종 공무원을 수색하기 위해 NLL(북방한계선) 가까이 접근했을 때 북한이 국제상선통신망으로 경고 방송을 했느냐”고 묻자 “네”라고 답변했다.

북한에서 피격돼 사망한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시신 등을 찾기 위해 해양경찰은 지난 9월 21일부터 13일째 추석연휴도 잊은 채 항공기, 경비함정 등을 동원해 연평도에서 소청도까지 광범위한 해역을 수색하고 있다. 사진은 서해5도특별경비단 소속 500톤급 경비함 경찰관이 수색하는 모습. /해양경찰청
북한에서 피격돼 사망한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시신 등을 찾기 위해 해양경찰은 지난 9월 21일부터 13일째 추석연휴도 잊은 채 항공기, 경비함정 등을 동원해 연평도에서 소청도까지 광범위한 해역을 수색하고 있다. 사진은 서해5도특별경비단 소속 500톤급 경비함 경찰관이 수색하는 모습. /해양경찰청

이에 하 의원이 “(9월) 21일, 22일에도 했느냐”고 추궁하자 이번에는 이 사령관이 “그렇다. 우리 군은 ‘정상적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북에 응답했다”고 했다. 이 사령관은 이어 “북측이 국제상선통신망으로 일방적인 통신을 했고 이에 대응한 것”이라고 했다. 인근 해역의 불특정 다수에게 공표하는 방식의 통신으로 우리 군에 경고했다는 의미다.

하 의원은 “(통신을 접하고) 우리 군이 북측에 실종자 관련 언급은 했느냐”고 질문했다. 부 총장은 “아 그거는 없었다”며 말을 흐렸다. 우리 군이 공무원 A씨의 구조·인계 요청 없이 “정상적인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평소처럼 답신했다는 얘기다.

북한은 이틀에 걸쳐 경고 방송을 한 지난달 22일 밤 우리 공무원을 총살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북한조차 자신들의 배가 표류하면 국제상선통신망으로 인계하라고 요청하는데, 우리 군은 북에서 먼저 경고 방송을 했음에도 적극적으로 국민을 구하려고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하 의원은 “이씨가 NLL 북쪽으로 넘어갔을 수도 있는데 어째서 구해 달라, 돌려 달라 이런 이야기를 하지 못했느냐”며 “다른 일도 아니고 실종자를 수색하던 도중에 (북측으로부터) 먼저 연락이 온 것 아니냐”고 했다. 해군 측은 이에 대답하지 못했다.

 

국제상선통신망은 서로 다른 국적의 배들끼리 연락하기 위해 사용하는 국제 표준 통신 채널이다. 이날 해군은 당시 북측의 경고방송과 그에 대한 대응은 쌍방이 주고받은 ‘교신’이 아닌 ‘일방적’ 통신이라고 강조했다. 또 북한이 평상시에도 NLL 일대에서 수시로 이런 경고방송을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러면서도 군 관계자는 “북한이 매일 수시로 경고방송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야당에선 “군이 수색·구조 요청을 게을리한 책임을 피하기 위해 북의 경고통신이 별일 아니란 식으로 물타기하려 한다”고 했다.

우리 군은 지난달 22일 오후쯤 감청으로 북한이 해수부 공무원 A씨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날도 북한은 국제상선통신망으로 먼저 “경계를 넘어오지 말라”고 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구조·인계 요구는 하지 않았다. 이날 밤 북한은 상부 지시로 이씨를 사살한 뒤 시신까지 소각했다. 이에 대해 해군 측은 “국방부로부터 (국제상선통신망으로) 우리 공무원의 실종 사실을 언급하지 말라는 지시는 따로 없었다”고 했다.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서욱 국방부 장관은 북한에 이씨 구조 요청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저희들이 첩보를 가지고 북에다 액션(구조 요청)을 취하기에는 조금 리스크가 있다”고 했다. 우리 측의 첩보 자산이 북한에 노출될 것을 우려해서 A씨의 구조·인계 요청을 하지 않았다는 취지다. 또 “저희들이 평상시 북한 선박이 떠내려오거나 표류자가 있으면 구조를 하듯이 이씨가 구조가 될 것으로 생각했었다”고도 했다.

야당은 “북한과의 군사통신선이 끊겨서 소통하지 못했다는 정부의 설명도 믿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이번 사건에서 가장 아쉽게 부각되는 것은 남북 간의 군사통신선이 막혀 있는 현실”이라며 “긴급 시 남북 간의 군사통신선을 통해 연락과 소통이 이루어져야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이나 돌발적인 사건 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수색 작업 당시 국제상선통신망으로 북측과 의사소통이 이뤄지고 있었던 셈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국민이 참혹하게 살해당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북한에 ‘살려서 넘겨 달라’고 말 한마디도 못했던 것”이라며 “정부와 군이 비난을 회피하기 위해 그간 북과의 통신 사실까지 숨겨왔던 것이라면 상황이 심각해 질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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