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조선중앙TV가 10일 오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창건 75주년 경축 열병식 연설 중 울먹이는 모습을 방송하고 있다. /조선중앙TV
북한 조선중앙TV가 10일 오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창건 75주년 경축 열병식 연설 중 울먹이는 모습을 방송하고 있다. /조선중앙TV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 연설에서 ‘고마움’ ‘감사’란 표현을 총 18차례 썼다. 대북 제재, 코로나, 수해의 3중고 속에서 버텨준 인민들이 고맙다는 것이었다. 인민들의 고난을 언급하는 대목에선 몇 차례 울먹였다. 한국을 향해선 “사랑하는 남녘 동포” “두 손을 마주 잡길 기원한다”며 유화 메시지를 발신했다.

진지하고 비장했던 김정은의 표정은 연설이 끝나고 대규모 열병식이 시작되자 눈에 띄게 밝아졌다. 북한판 이스칸데르, 에이태킴스 등 대남 타격용 신무기 4종 세트가 등장하자 얼굴에 미소가 번졌고, 마지막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광장을 지나갈 땐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회색 양복 정장 차림으로 등장한 김정은은 이날 연설 서두에서 “무슨 말부터 할까 많이 생각해봤지만 진정 우리 인민들에게 터놓고 싶은 마음속 고백, 마음속 진정은 ‘고맙습니다’ 이 한마디뿐”이라고 했다. 이 말을 시작으로 ‘고맙다’는 표현이 12차례, ‘감사’란 표현이 6차례 나왔다. ‘고생’ ‘미안하다’는 표현도 최소 5차례 썼다. 7700자 분량의 연설 가운데 첫 인사(370자)와 군사력 과시(1200자) 등을 제외하면 이처럼 ‘고마움’ ‘미안함’을 표현하는 데 대부분(약 5000자)를 할애한 ‘인민 예찬’이었다.

횃불… 눈물… - 북한 청년 학생들이 10일 오전 0시부터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식 열병식에서 횃불 행진을 하고 있다(왼쪽 사진). 북한 주민들은 이날 열병식에서 김정은이 20여분간 연설을 하며 주민의 어려움을 언급하며 울먹이자 같이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보였다(오른쪽 사진). 북한은 이번 열병식을 사상 처음으로 심야에 화려한 조명을 동원해 연출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조선중앙TV 뉴시스
횃불… 눈물… - 북한 청년 학생들이 10일 오전 0시부터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식 열병식에서 횃불 행진을 하고 있다(왼쪽 사진). 북한 주민들은 이날 열병식에서 김정은이 20여분간 연설을 하며 주민의 어려움을 언급하며 울먹이자 같이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보였다(오른쪽 사진). 북한은 이번 열병식을 사상 처음으로 심야에 화려한 조명을 동원해 연출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조선중앙TV 뉴시스

김정은은 “방역 전선과 자연재해 복구 전선에서 인민군 장병이 발휘한 애국적 헌신은 감사의 눈물 없이 대할 수 없다”고 말하는 대목에선 눈물을 보였다. 3중고를 겪는 인민들에 대해 “면목이 없다”며 자책도 했다. 연설 마지막 역시 “변함없이 우리 당을 믿어주시는 마음들에 충심으로 감사를 드린다”는 말로 마무리됐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연설 전반부에서 인민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을 반복 표현하고, 울먹이는 모습을 통해 애민 헌신의 모습을 연출했다”고 분석했다.

한국을 향해선 “사랑하는 남녘의 동포들에게도 따뜻한 이 마음을 정히 보내며 하루빨리 이 보건 위기가 극복되고 북과 남이 다시 두손을 마주 잡는 날이 찾아오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이를 두고 정부·여당 일각에선 “해수부 공무원 사살 사건으로 악화된 한국 민심을 의식한 발언으로, 대화 재개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란 해석을 내놓았다. 하지만 전직 통일부 관리는 “결국 코로나 사태 완전 해결 전까진 만날 생각이 없다는 뜻”이라고 했다. 한국 관련 언급도 딱 한 문장(84자)으로 전체 연설의 1% 남짓이었다.

김정은은 이날 ‘핵무력’ 대신 ‘전쟁 억제력’이란 표현으로 핵·미사일 능력을 자화자찬했다. 그는 “핵 위협을 포괄하는 위협적 행동들을 억제하고 통제·관리하기 위해 자위적 정당 방위수단으로서의 전쟁 억제력을 계속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비핵화를 재차 거부한 것으로 풀이됐다. 김정은은 또 미국을 직접 언급하지 않은 채 “그 누구를 겨냥해 전쟁 억제력을 키우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어떤 세력이든 우리 국가 안전을 다쳐놓는다면 가장 강한 공격적 힘, 선제적으로 총동원해 응징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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