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에게 사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씨 유족들은 6일 고인이 월북(越北)하려 했다는 군과 해경의 주장 등에 대해 “제발 가슴에 비수를 꽂지 말아 달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면서 비무장 민간인을 잔혹하게 사살하고 시신을 불태운 북한의 만행을 널리 알려야 한다며 유엔에 공식 조사를 요청했다.

북한군에 피격돼 숨진 해양수산부 산하 서해어업지도관리단 소속 해양수산서기(8급) A씨의 형 이래진 씨가 국민의힘 하태경, 태영호 의원과 함께 서울 종로구 북한인권사무소에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요청서를 전달하기 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0.10.06./뉴시스
북한군에 피격돼 숨진 해양수산부 산하 서해어업지도관리단 소속 해양수산서기(8급) A씨의 형 이래진 씨가 국민의힘 하태경, 태영호 의원과 함께 서울 종로구 북한인권사무소에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요청서를 전달하기 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0.10.06./뉴시스

고인의 친형 이래진(55)씨는 이날 국민의힘 하태경·태영호 의원과 함께 서울 종로구 유엔북한인권사무소를 찾아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 앞으로 조사 요청서를 제출했다. 이씨는 요청서에서 "비무장 민간인으로 약 36시간을 해상 표류하는 동안 거의 실신 상태였을 동생을 북한이 총탄 10여 발로 무참히 살해한 사건을 국제사회와 유엔에 알리고, 공정하고 객관적인 조사를 요청하고자 한다”고 했다. 유족들은 고인의 고등학생 아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쓴 자필 편지, 유족들의 지난달 29일 외신 기자회견 내용 등도 함께 제출했다.

유족들은 또 고인이 북한군에게 살해당할 당시 군(軍) 감청 기록, 녹화 파일 등과 관련한 정보 공개를 국방부에 청구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고인 아들의 편지에 ‘해경 조사와 수색 결과를 기다려보자’는 답을 내놓았다. 그러나 고인의 형 이래진씨는 이날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조사할 게 없는데 뭘 조사하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이건 (군의 감청 첩보 등을 공개하면) 일주일 만에 종결되는 사안”이라며 “우리가 청구한 정보나 주시면 좋겠다”고 했다.

북한군 총격으로 숨진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형 이래진씨가 6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종합민원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씨는 이날 사건 발생 당시 우리 군이 감청한 북한군 대화 녹음 파일, 북한군이 동생의 시신을 훼손하는 모습을 담은 녹화 파일 등에 대한 정보 공개를 청구했다. /장련성 기자
북한군 총격으로 숨진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형 이래진씨가 6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종합민원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씨는 이날 사건 발생 당시 우리 군이 감청한 북한군 대화 녹음 파일, 북한군이 동생의 시신을 훼손하는 모습을 담은 녹화 파일 등에 대한 정보 공개를 청구했다. /장련성 기자

이씨는 “생전 친동생, 아버지, 남편의 마지막 목소리를 듣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고, 마지막 모습을 멀리서나마 보고 싶어하는 것이 본성”이라며 “유가족들이 사망한 공무원의 생전 마지막 목소리를 듣고 모습을 보기 위해 이번 공개청구를 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유족들은 고인이 월북을 시도하다가 북한군에게 사살당했다는 군과 해경 주장에 억울함을 호소했다. “고인은 확고한 국가관을 가지고 있는 모범적 공무원이자 애국자였기 때문에 월북이나 극단적 시도를 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래진씨는 그 근거로 고인이 생전 해수부 등 정부에서 받은 표창장 4점을 공개했다. 고인의 아들도 전날 문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빠는 공무원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높았다”고 했다.

이씨는 이날 국방부 기자회견에서 고인 아들이 문 대통령 앞으로 쓴 편지도 낭독했다. 그는 “편지를 처음 보고 눈물을 다 흘렸다”며 “오늘 이 편지를 낭독할 때 울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만큼 제 마음가짐과 생각이 단단해졌다”고 했다. 이어 “지금부터는 ‘월북 프레임’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 ‘월북’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겠다”며 “(월북 비난 등과 관련) 나는 상관없는데 어린 조카나 가족들이 상당히 힘들어한다”고 했다.

우리 군은 감청 등 첩보를 바탕으로 고인이 월북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고인이 실종된 곳부터 이런 군의 판단에 의문을 낳고 있다. 고인은 서해 대연평도 남방 소연평도 인근 해역에서 실종됐다. 해경은 “고인이 단순 표류했다면 소연평도를 중심으로 반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남서쪽으로 떠내려갔을 것”이라며 고인이 소연평도 북서쪽 38㎞ 떨어진 북한 등산곶 인근 해상에서 발견된 것은 인위적으로 조류를 거슬러 월북한 정황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고인의 아들은 “수영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 없는 키 180㎝에 68㎏밖에 되지 않는 마른 체격의 아빠가 38㎞를 조류를 거슬러 갔다는 것이 진정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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