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해경이 북한에 사살·소각된 공무원이 탔던 '무궁화 10'호를 조사 중인 모습. /뉴시스
지난 25일 해경이 북한에 사살·소각된 공무원이 탔던 '무궁화 10'호를 조사 중인 모습. /뉴시스

해양경찰청이 국방부가 북한군의 해양수산부 공무원 A씨 사살 사실을 공식 발표할 때까지 청와대나 국방부 등에서 A씨 관련 정보를 받지 못한 것으로 27일 나타났다. 청와대와 군이 이미 A씨가 북한군에 사살당한 것을 알았을 때도 해경은 관련 정보를 받지 못해 엉뚱하게 실종자 수색만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군에서 보고받은 A씨 피랍 첩보를 적기에 해경에 전달했다면 수색 선박들을 북방한계선(NLL) 근처로 보내 대북 통신·방송 등을 통해 최대한 구조 활동을 해볼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의힘 ‘북한의 우리 국민 사살·화형 만행 진상조사 TF’는 27일 “실종자 수색을 위한 모든 책임은 해경에 있었지만, 국방부와는 실종자 수색에 대한 연락이 안 된 것으로 조사됐다”며 “해경은 지난 25일 (A씨가 북한군에 사살됐다는) 언론 보도를 보고 당일 수색 활동을 종료했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A씨 실종 다음 날인 지난 22일 오후 6시 36분 군의 첩보를 통해 A씨가 북한 측 선박에 발견된 사실을 알았지만 A씨 수색에 나선 해경 등에 통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6일 인천시 옹진군 소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해양경찰이 해양수산부 서해어업관리단 소속 공무원 A(47)씨의 시신과 소지품을 찾는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인천해양경찰서 제공
26일 인천시 옹진군 소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해양경찰이 해양수산부 서해어업관리단 소속 공무원 A(47)씨의 시신과 소지품을 찾는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인천해양경찰서 제공

이 바람에 해경은 A씨가 북한군에 사살된 현장에서 30여㎞ 떨어진 소연평도 부근 해상에서 수색 작업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경이 국민의힘 이채익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해경은 A씨 실종 당일인 21일부터 해군, 옹진군, 민간 등에 연락해 끌어모은 선박 20여척을 동원해 소연평도 부근 해역을 4구역으로 나눠 수색했다고 한다.

청와대와 군에서 정보를 받지 못해 A씨가 실종된 줄로만 알았던 해경의 수색은 24일 오전 국방부가 A씨 사살 사실을 발표한 직후에야 중단됐다. 이날 국방부가 A씨 피살 사실을 발표한 시각은 오전 11시였는데, 해경의 수색 작전 종료는 그로부터 37분 후인 11시 37분에 이뤄졌다. 해경은 21일 낮 12시 57분 502함 출동을 시작으로 24일 오전 11시 37분에 수색을 종료할 때까지 70시간 40분간 소연평도 앞바다에서 수색 작업을 했다. 감청 등을 통해 A씨 관련 첩보를 확보한 군과, 군의 보고를 받은 청와대가 정보를 공유해주지 않아 엉뚱한 곳에서 실종자 수색을 벌인 셈이다. 만약 해경이 청와대나 국방부에서 A씨 피랍 사실을 적기에 통보받았다면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NLL까지 진출해 대북 통신·방송 등을 통해 구출 작업에 나설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군은 북한군 통신 정보 등을 감청해 A씨가 해상에서 표류하다 북한군에 붙잡힌 사실을 확인하고도 아무런 구조 조치를 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오후 6시 36분 A씨가 북측에 나포된 사실을 서면으로 보고받았지만 그를 구출하라는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22일 첫 보고 이후 다음 날(23일) 오전 8시 30분쯤 A씨 사살, 시신 소각 관련 대면 보고를 받기까지 14시간 동안 이번 사건과 관련한 적극적 대응 조치를 거의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문 대통령 대면 보고가 늦어진 이유에 대해 “시간상으로 새벽이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대면 보고를 받고 나서도 “사실을 확인해 보라”고 했다. 그 사이 23일 오전 1시 26분에는 북한에 종전 선언과 ‘공동 방역’을 제안하는 문 대통령의 유엔 연설이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에서 화상으로 진행된 제75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22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에서 화상으로 진행된 제75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청와대

청와대와 군은 북측과 공식적인 연락망이 끊긴 상황이라 실시간 대처가 어려웠다고 했다. 하지만 해경은 연안국에 해사안전정보를 공급하는 ‘교통문자방송’을 통해 한글과 영문으로 4차례 A씨 실종 관련 사실을 국제 사회에 통보했다. 해경은 이 문자를 북측이 수신했는지는 확실치 않다고 했다. 하지만 A씨 피살 첩보를 공유받지 못한 해경이 A씨를 찾기 위해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조치에 나선 상황에서 관련 첩보를 확보한 청와대와 군이 손을 놓고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더구나 청와대는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친서까지 주고받았지만, A씨 사건 해결을 위한 북과 접촉엔 소극적이었다. 군도 통신망이 끊겼다는 이유로 북한군을 상대로 한 사실 확인이나 항의에 주저했고, A씨가 피살된 다음 날 오후에서야 유엔군사령부를 통해 이번 사건과 관련된 통지문을 발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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