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오전 청와대에서 군 장성 진급 및 보직 신고식에 참석해 경례를 받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오전 청와대에서 군 장성 진급 및 보직 신고식에 참석해 경례를 받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은 24일 북한의 우리 공무원 총살에 대해 “충격적인 사건으로 매우 유감스럽다.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공무원 총살이 청와대에 보고된 지난 22일 밤 이후 이틀 동안 군 통수권자로서 적절한 대응을 했는지 논란이 커지고 있다. 청와대는 “첩보 수준의 보고를 확인하고 이를 공표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고 했다. 그러나 국민의힘 등 야당은 “대통령이 북한의 도발을 은폐했다”며 사과와 해명을 요구했다.
 
문 대통령은 공무원이 실종된 지난 22일 오후 6시 30분 첫 서면 보고를 받았다. 총격이나 시신 훼손은 확인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초기부터 군에 적극적 대북 대응을 지시했다면 상황 악화를 막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군은 4시간 뒤인 22일 밤 10시 30분 총격 및 시신 훼손을 청와대에 보고했다. 청와대는 22일 밤 문 대통령에게 추가 보고됐는지 공개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보고를 받고도 군이나 국정원에 대북 조치를 지시하지 않았다면 ‘소극 대응’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첩보 수준의 정보로는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어려웠다”며 대통령이 22일 밤 어떤 형태로든 총격 보고를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23일 오전 8시 30분에야 첫 대면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22일 밤부터 첫 대면 보고 사이인 23일 새벽 1시부터 1시간 30분 동안 청와대에서는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정원장, 통일부 장관, 국방부 장관 등이 참석한 긴급회의가 열렸다. 같은 시각인 23일 새벽 1시 26분부터 16분간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강조했던 유엔 온라인 연설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군이 청와대에 총격 보고를 한 것과 유엔 연설 사이에는 3시간의 시차가 있다. 청와대는 “유엔 연설은 지난 15일 녹화돼 18일 유엔에 발송됐다”며 “이번 사건과 대통령의 유엔 연설을 연계시키지 말아달라”고 했다.
 
北 총살 대응 ‘文 대통령의 시간’
北 총살 대응 ‘文 대통령의 시간’
 

문 대통령은 23일 오전 첫 대면 보고를 받고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고 북에도 확인하라. 첩보가 사실로 밝혀지면 국민이 분노할 일이니 국민에게 알리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대면 보고를 받은 이후에도 즉각적인 발표보다 “사실을 확인하라”고 지시해 국민과 유족이 하루를 ‘깜깜이’로 보낸 것을 두고 늑장 대응 및 은폐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남북 관계를 최우선 순위로 두다 보니 소극 대응 논란을 자초했다는 지적과 함께 군의 부실 보고도 문제가 되고 있다. 청와대는 “대체 무슨 이유로 은폐하겠느냐”고 반박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23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군 진급 신고식에서 “평화의 시대는 일직선으로 나 있는 길이 아니다”라며 군에 ‘안전판’ 역할을 해달라고 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 속에 북한 도발과 군의 단호한 대응을 지시하는 긴장감은 없었다. 군 장성들도 “삼정검은 칼집 안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대통령 말씀의 의미를 새기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24일 오전 군의 최종 보고를 받고도 “첩보가 신빙성이 있느냐”고 다시 확인했고, 군은 “신빙성이 높다”고 답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자신이 주재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 대신 안보실장 주재 NSC 상임위 소집을 지시하고 대국민 발표를 지시했다. 총격 만행이 벌어진 이틀 뒤였다.

문 대통령이 사건 이후 이틀 동안 대북 조치와 대국민 발표 대신 “사실을 확인하라”고 지시한 것에 대해 야권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을 비판했던 모습과 너무 다르다”며 은폐 문제를 제기했다. 청와대는 “최종적 사실 관계가 확정되지 않았고, 북한과도 연락이 끊긴 상황에서 무리한 발표를 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청와대는 이날 오후에야 22일 밤부터 24일 오전까지 군의 보고와 문 대통령의 지시 사항 등을 일괄 공개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북한의 도발을 규탄하면서도 “남북 관계는 지속되고 앞으로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기존의 대화 기조를 바꾸지는 않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24일에도 뉴딜 문화콘텐츠산업 전략보고회에 예정대로 참석했다.

평양 정상회담 2주년과 유엔 연설을 통해 남북 및 미북 대화 재개를 모색했던 문 대통령과 청와대는 북한의 총살 도발로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앞으로 남북 관계가 악화될 일만 남은 것 같아 정말 걱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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