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한국석좌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한국석좌

북한은 ‘블랙박스’ 중에서도 가장 깜깜한 박스다. 북한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확인하기 아주 어렵다는 의미다. 최근 북한 지도 체제와 관련한 의문도 마찬가지다. 김정은이 공개 석상에서 사라지고 여동생 김여정이 갑자기 부상하면서 김정은 건강과 김여정 결정권에 대한 별의별 추측이 잇따랐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우리가 여전히 북한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는 점만 확인했을 뿐이다.

워싱턴에서는 북한이 홍수와 제재에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남매 통치 시기 중 가장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을 것이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이른바 ‘3중고(triple whammy)’가 11월 미 대선이 다가오면서 체제에 영향을 줄 것이란 얘기다. 컨설팅회사 피치설루션스는 올해 북한 경제가 -8.5% 성장하면서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 이후 최악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김정은은 지난 8월 북한 경제난을 인정하면서 내년 1월 노동당 대회에서 새로운 경제 개발 계획을 발표하겠다고 예고했고, 조선중앙통신은 당 중앙위원회가 인민들 생활이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고 전했다.

북한을 유심히 관찰하지 않는 사람들도 당 중앙위가 왜 그렇게 나오는지는 이해할 수 있다. 북한은 올해만 태풍 8개가 덮치면서 최악의 홍수 피해를 입었다. 8월에는 대동강, 청천강, 예성강이 범람해 주거 지역을 휩쓸었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가 귀띔한 바로는 김정은이 피해가 극심한 함경도 지역을 찾아 긴급 구호 식량을 방출한 건 김정일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홍수는 식량 상황에 영향을 미친다. 한 NGO에 따르면 북한 계단식 농토의 43%가 홍수로 유실되고 비료가 떠내려갔다고 한다. 미 농무부는 쌀과 옥수수를 주로 생산하는 함경남·북도에서 농토의 30~50%가량이 훼손됐고, 올겨울 북한 인구 중 60%가 식량난에 시달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한은 현재 코로나19 유입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물론 이게 진실이라고 믿을 이유는 없다. 개성시가 코로나 때문에 폐쇄됐다는 보도가 있었고, 함경도 홍수 피해 구호 작업을 위해 당이 군대를 파견하려 했지만 코로나 확산을 우려해 제한했다는 말도 나왔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주 CSIS 유튜브에 나와 코로나 사태가 북한에 국제 제재 효과를 가중했다고 지적했다. 북한에 대한 제재 효과가 반감된 이유는 항상 중국이었다. 중국은 공산주의 형제를 보좌하고 완전한 고립을 막으려 했다. 그럼에도 코로나에는 어쩔 수 없었다. 북·중 국경 폐쇄에 따라 양국 간 무역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북·중 무역은 전년 대비 70% 감소했다. 이는 경기 침체를 야기할 것이다.

홍수, 제재, 코로나 이 3중고가 앞으로 북한과 미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북한은 그동안 자기들이 미국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부풀려 왔다. 그러나 실제론 미국인들 투표에 북한은 주요한 고려 요인은 아니다. 그럼에도 올해는 다르다. 트럼프가 김정은과 외교 성과에 너무 많이 투자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두 달간 북한이 탄도미사일 발사 같은 도발을 한다면 트럼프를 몹시 당혹스럽게 할 것이다.

CSIS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전통적으로 미국 선거 기간 동안 도발 횟수를 늘렸다. 그게 의회 선거든 대선이든 김정은 시대에도 패턴이 일정하다. 예외가 있다면 2018년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이후일 뿐이다. 당시 미국에선 중간선거가 치러졌지만 북한 도발은 소강상태였다. 그러나 이 예외는 역설적으로 그 규칙을 입증한다.

다른 모든 조건이 같다면 미국 대선을 전후해 북한의 도발이 더욱 심해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이런 도발은 자연스럽게 트럼프 집권 2기건 새로운 바이든 대통령이건 미국 대북 정책이 어떻게 될지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된다. 이런 도발은 홍수와 제재 그리고 코로나조차 북한의 일정한 행태에 영향을 줄 만큼 심각하지는 않다는 점을 뜻한다. 미국 대선이 북한 도발 없이 치러진다면 그건 뭔가 ‘평시(business as usual)’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암시한다. 체제 내부 문제가 심각해 외부로 뭔가 행동을 취할 여력이 없다는 걸 시사하는 것이다.

이는 오랜만에 처음으로 미국의 대북 정책 검토가 사전에 결정된 어떤 결과와 무관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의미다. 과거 북한은 오바마 대통령 당선 후에도 몇 주 만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것처럼 선거 후에 꼭 도발을 감행해 새로 들어선 미 행정부가 1차원적 봉쇄와 고립 정책을 결심하게 만들곤 했다. 아마 그럴 수 있다면 3중고를 겪고 있는 북한엔 한 가닥 희망(silver lining)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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