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아첨의 걸작(masterpiece)이다!’
9일(현지 시각) CNN 등에 따르면 ‘워터게이트’ 특종기자 밥 우드워드(워싱턴포스트 부편집인)는 신간 ‘격노’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를 분석한 중앙정보국(CIA)이 이 같은 평가를 내렸다고 전했다. 우드워드는 책에서 “(CIA) 분석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역사적 중심 무대에 오른 느낌을 주면서, 정확한 아첨의 혼합을 찾아낸 (편지의) 기술에 경탄했다”며 “트럼프가 김정은의 아첨에 완전히 넘어갔다”고 했다. 우드워드는 트럼프가 김정은과 주고받은 27통의 친서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의 친서를 “일급 비밀”이라고 건네주지 않았고, 우드워드가 이를 열람할 수 있게만 했다. 이에 우드워드는 친서 내용을 구술해 녹음기에 담았고, CNN은 이날 2018년 12월 25일, 2019년 6월 10일에 작성된 2통의 편지를 공개했다.
김정은은 2018년 12월 25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각하(Your excellency)’란 표현을 9번이나 쓰며 “전 세계가 큰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가운데 아름답고 성스러운 장소에서 각하의 손을 굳게 잡은 그 역사적 순간(2018년 6월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2차 정상회담과 관련해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저와 각하의 또 다른 역사적 만남을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전 세계가 다시 한번 보게 될 것”이라며 트럼프의 “위대한 결단력과 훌륭한 리더십”을 보여달라고 했다.
김정은은 2019년 2월 하노이 2차 미북 정상회담에 이어 그해 6월 보낸 친서에선 “며칠 앞으로 다가온 당신의 생일(6월 14일)을 축하하기 위해 이 편지를 쓴다”며 “103일 전 하노이에서 나눈 순간순간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는 영광의 순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우리 사이의 깊고 특별한 우정이 마법의 힘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아무런 합의 없이 걸어나오면서 김정은이 ‘빈손’으로 돌아가는 굴욕을 겪었지만, 트럼프에게 보낸 편지에선 ‘영광의 순간’이라고 아첨을 한 것이다. 김정은은 트럼프에게 “각하를 존경하는 마음은 절대 변치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 친서엔 ‘각하’란 표현이 7번 들어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김정은을 판문점에서 만나기 직전인 2019년 6월 김정은에게 보낸 서한에서 “당신과 나는 독특한 스타일과 특별한 우정을 갖고 있다”고 했다고 우드워드는 적었다. 또 그해 6월 30일 판문점에서 만난 후 김정은에게 보낸 편지에선 두 사람의 사진이 실린 뉴욕타임스 1면 사본을 첨부해 보내면서 “당신과 함께한 것은 정말 놀라웠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틀 뒤 회동 사진 22장을 또 보내기도 했다.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케미(호흡)’에 대해 “당신이 여자를 만난다면 1초 만에 일이 진행될지 아닐지 알 수 있다. 10분, 6주가 아니다. 1초도 안 걸린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 달쯤 뒤 김정은은 ‘실망한 연인’과 같은 편지를 보내왔다고 우드워드는 밝혔다. 김정은은 한미 군사훈련이 완전히 중단되지 않은 데 불만을 표하면서 “나는 분명히 기분이 상하고 당신에게 이런 감정을 숨기고 싶지 않다. 정말 매우 불쾌하다”고 했다.
우드워드는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향해 “화염과 분노”를 언급하며 미북 긴장이 고조됐을 당시,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북한과의 전쟁 상황을 우려해 옷을 입은 채로 잠을 잤다고 했다. 또 매티스가 국가의 운명에 대해 기도하기 위해 워싱턴대성당을 자주 찾았을 정도로 전쟁 위기가 고조됐다고 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10일 트위터에 “김정은은 건강하다. 절대 그를 과소평가하지 마라”고 썼다. 추가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우드워드의 책 내용 공개와 김정은의 ‘건강 이상설’ 등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