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영 통일장관·박지원 국정원장, 대북정책 주도권 놓고 불협화음
 

새 외교·안보 라인이 출범한 지 한 달이 지난 가운데 통일부와 국가정보원 간의 불협화음이 감지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이인영 통일장관과 박지원 국정원장 등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원팀으로 지혜를 모아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런데 베테랑 정치인을 수장으로 맞은 두 기관이 최근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는 듯한 장면이 몇 차례 연출됐다. 통일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남북 물물교환 사업이 국정원의 국회 보고 직후 무산 위기를 맞은 것이나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2인자' 등극 여부를 놓고 두 기관이 의견 차를 드러낸 것이 대표적이다.

이인영 장관은 지난달 27일 취임 후 남북 관계 교착 국면을 돌파하겠다며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제시해왔다. 한국 쌀과 북한 맥주를 맞바꾸자는 이른바 '작은 교역' '워킹그룹 재조정론' 등을 제안했다. 전임 조명균·김연철 장관 시절 통일부가 대북 업무의 주도권을 국정원에 내준 채 2선에 머물렀던 것과는 사뭇 다른 기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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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상훈

하지만 이 장관이 추진한 남북 물물교환은 지난 20일 국정원이 국회 정보위에 "(북측 거래 상대인) 개성고려인삼회사가 유엔과 미국 제재 대상에 해당한다"고 보고한 뒤 제동이 걸렸다. 나흘 뒤 소집된 정보위에서 서호 통일부 차관은 여야 정보위원들의 관련 질의가 쏟아지자 결국 "사업 추진이 어렵게 됐다"는 취지로 보고했다. 그러자 통일부는 출입기자단에 "철회가 아니라 계약 내용을 재조정한 것"이란 입장을 냈다. 하지만 '실세 장관'의 1호 사업이 사실상 좌초하자 내부적으로는 이를 아쉬워하는 분위기가 강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음 날 이 장관은 국회 외통위에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2인자나 후계자의 위상을 확립해 전권을 행사한다고 말하는 건 무리한 해석"이라고 했다. 앞서 국정원은 김여정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권한 일부를 이양받아 사실상 2인자로 '위임 통치'에 나섰다고 밝혔는데, 이 장관이 이를 반박하는 모양새를 연출한 것이다.

국정원은 이달 초 통일부에 '인삼회사와의 사업 추진은 제재 위반의 소지가 있다'는 취지로 브리핑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장관은 물물교환 사업 추진 의지를 접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국정원 고위 관계자는 "문제 소지가 있는데도 물물교환을 밀어붙인 것은 대북 업무의 주도권을 의식한 것 아니냐"고 했다.

국회 정보위 미래통합당 간사인 하태경 의원은 "통일부가 국정원의 보고를 무시한 것 아니면 국정원의 판단을 뒤집으려 한 것 아닌가 의심된다"며 "(국정원이) 이 장관 본인의 물물교환 구상에 장애물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 장관은 최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최근 제 마음도 많이 급하고 답답하다"고 했다.

국정원 속내는 복잡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국정원은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을 비롯해 남북 관계의 흐름을 바꾸는 굵직한 업무를 독점했다. 반면 통일부는 실무 사업에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이 장관이 이런 현상을 타파하려는 모습을 연출하자 이를 의식하는 모습이다. 지난 20일 박지원 원장의 국회 첫 보고에서 북한의 반발을 살 수 있는 '위임 통치'라는 이례적 표현까지 동원해 대북 정보를 적극 '세일즈'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전직 국정원 관리는 "정치인 출신인 박지원 원장이 대북 정책 주도권 경쟁에서 이인영 장관을 압도하기 위해 국정원의 강점인 대북 정보력을 적극 활용하는 것 같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8/27/202008270018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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