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취임 후 남북관계 관련 각종 구상을 쏟아내고 있는 이인영 통일부 장관의 활동에 미국 조야(朝野)에서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 장관은 현재까지 ▲물물교환 같이 이른바 ‘작은 교역’을 통한 남북교류협력 재개 ▲한미워킹그룹의 실무·정무 분리 운영 등을 제안한 상태다. 남북대화 복원과 인도적 지원, 남북 간 합의 이행 등 소위 ‘노둣돌 전략’의 일환이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북한 개별관광 허용 등 남북교류 재개를 위한 시간' 토론회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북한 개별관광 허용 등 남북교류 재개를 위한 시간' 토론회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이에 대해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가 촘촘하고 코로나19가 북한을 휩쓴 상황에서 현실성이 없다”, “문제는 워킹그룹이 아니라 남북관계 개선을 거부하는 김정은”이라며 비관적인 입장을 내놓고 있다. 북한이 외부 지원을 받지 않겠다고 입장을 밝혔고 내년 1월까지는 대외 행보가 없을 것을 시사한 상황에서 이 장관의 무리한 행보가 한미 공조를 약화하고, 동맹을 와해시킬 것이라는 우려의 시선도 나오고 있다.

◇이인영 설탕·술 맞바꾸기 계속 ‘고’… “동맹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남한의 설탕과 북한의 술을 맞바꾸는 물물교환을 추진하던 통일부 구상이 제재 위반 우려로 무산된 가운데,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작은 교역’으로 남북 교류 협력의 물꼬를 트겠다는 이인영 통일부 장관의 구상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비판하고 있다.

미국의 대북제재 전문가인 조슈아 스탠턴 변호사. /미 북한인권위원회(HRNK)

미국의 대북제재 전문가인 조슈아 스탠턴 변호사. /미 북한인권위원회(HRNK)

미국의 대북제재 전문가인 조슈아 스탠튼 변호사는 최근 자유아시아방송(RFA) 인터뷰에서 “유엔 대북결의가 금지한 공적·민간 차원의 재정 지원(2321호) 또는 금지된 합작사업(2375호) 등에 해당하는지 한국 정부가 분명히 짚어야 한다”고 했다.

앞서 한국의 민간단체인 남북경총통일농사협동조합은 북한 개성고려인삼무역회사와 1억5000만원 상당의 북한 술 35종을 설탕 167t과 맞바꾸는 계약을 체결했지만, 인삼회사가 유엔 제재 대상인 노동당 39호실 산하 기관이라고 파악되면서 사업이 사실상 무산됐다. 스탠튼 변호사는 “대북제재 문제 이외에도 코로나19 상황으로 볼 때 한국 정부의 물물교환 사업 및 대북 관광 모두 실제로 추진되긴 힘들다”고 했다.

켄 고스 미 해군분석센터 국장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북한은 외부 사람들이 들어오도록 허용하는 것을 매우 꺼릴 것”이라고 했다. 로버트 매닝 애틀란틱카운슬 연구원도 “김정은이 다양한 이유로 남북 협력사업에 수용적이지 않다”며 “한국 정부가 남북 화해를 향한 일부 희망을 위해 한미동맹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통일부는 물물교환 형태의 남북한 교역을 강행하겠다는 기존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25일 기자들과 만나 “인삼회사를 제외한 북측 기업들은 제재 위반 소지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다른 북한 기업들과의 교역 승인은 계속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 장관은 지난달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금강산·백두산의 물, 대동강의 술, 이런 것과 우리의 쌀, 그 다음에 약품, 의약품, 이런 부분들은 물물교환의 형태로 작은 교역에서부터 출발해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美 전문가들, 워킹그룹 쪼개기 제안에 “이해 못하겠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25일 여권(與圈)에서 폐지론이 나오는 한미워킹그룹에 대해 “기술·실무적인 부분과 정치·정무적인 부분을 나눠서 운영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이 장관은 이날 국회에 출석해 “워킹그룹 운영 과정에서 기술·실무적 분야와 정책·정무적 분야로 세션을 2개로 운영해 원래 워킹그룹에서 다루기로 했던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 문제에 대해서 논의하고, 기술·실무적인 부분도 훨씬 충실하게 사전적으로 다뤄나갔으면 한다”고 했다.

지난 18일 정부서울청사 장관실에서 해리 해리스(왼쪽) 주한 미국대사가 이인영 통일부 장관 취임 후 첫 환담을 하며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8일 정부서울청사 장관실에서 해리 해리스(왼쪽) 주한 미국대사가 이인영 통일부 장관 취임 후 첫 환담을 하며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장관은 또 “인도적 측면의 협력·교류와 관련해서 우리 스스로 판단할 부분이 더 많고 강화돼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일정한 기간 동안 동일한 사업과 관련해서는 포괄적으로 주제를 다루고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과정이면 좋겠다”고 했다. 남북교류 협력 사업을 추진할 때마다 매번 워킹그룹의 협의 과정을 밟아야 하는 현실에 대해 간접적으로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야권에선 “눈엣가시 같은 워킹그룹을 없앨 순 없으니 쪼개서 힘이라도 빼겠다는 의도 같다”는 말도 나왔다.

크리스토퍼 힐 전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 /연합뉴스

크리스토퍼 힐 전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 /연합뉴스

하지만 이런 구상에 대해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차관보는 25일(현지 시각) RFA에 “실무와 정무 분리하면 양국 간 공조 기회가 줄어들 것”이라며 “실무그룹을 남북관계 제약하는 기제라며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지적했다. 그는 “의도적으로 이슈·사안(invested issue)을 만들려는 것”이라며 “문제는 남북관계 개선을 거부하는 북한”이라고 했다.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정책조정관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입장을 바꿔 한국의 인도적 지원을 받기로 결정하지 않는 한 한미실무그룹의 운영 방식 변화가 남북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했다.

앞서 해리스 해리스 주한미국대사도 지난 18일 이 장관을 예방한 자리에서 워킹그룹 운영 방식과 기능 재조정 요구에 대해 “한미워킹그룹은 효율적인 메커니즘”이라며 우회적으로 반대 의사를 피력한 바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8/26/202008260088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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