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공무방해 영장도 기각… 후원금 유용 혐의로 수사 선회
 

이종순(81) 변호사는 최근 경찰에서 뜬금없는 연락을 받았다. '탈북자 단체인 자유운동연합 박상학 대표 계좌로 돈을 보내준 게 맞느냐'는 것이었다. 이 변호사는 이 단체에 비정기적으로 10만~50만원을 후원해왔다. 서울경찰청이 이 변호사에게 보내온 서면 질의서는 '박상학 대표 계좌로 총 4회 80만원을 송금한 게 맞느냐' '진술인은 자유운동연합의 회원이냐' 등을 물었다고 한다. 이 회장은 "경찰은 참고인 조사 명분으로 영장도 없이 소액 후원자를 일일이 털어 범죄 혐의를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본지 취재 결과 경찰은 박씨의 후원금 횡령 의혹과 관련해 소액 후원자를 포함한 300여 명을 참고인 조사 중이다. 경찰은 이미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박씨의 금융 계좌를 조회한 상태다. 당사자의 계좌를 들여다보고도 추가로 후원자 수백 명에 대한 조사를 벌이는 것이다. 일각에선 "후원자에게 부담감을 줘 탈북 단체의 돈줄을 막으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경찰의 수사 근거는 경기도가 지난 6월 자유운동연합에 대해 사기와 자금 유용 혐의로 수사를 의뢰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 김여정의 대북 전단 살포 비난 직후 정부의 전단 살포 금지 조치에 따르지 않은 이 단체를 '별건 수사'로 압박하려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경찰은 전단 살포로 박 대표를 처벌하는 것이 여의치 않자, 박씨가 자신의 집으로 찾아온 취재진을 폭행하고 공무 집행을 방해한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이 이를 기각하며 보완 수사를 지휘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경찰이 특정 단체의 후원금 횡령 의혹과 관련해 소액 후원자까지 조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경찰은 2018년 1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반대하는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의 횡령 의혹과 관련해 소액 후원금을 낸 시민 2만명의 금융 계좌를 조회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요구했던 '촛불 집회' 주관 단체도 같은 혐의로 2018년 1월 검찰에 고발당했지만, 검찰은 후원자에 대한 조사를 한 차례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두고 "같은 후원금 문제라도 반(反)정부 성향 단체만 표적 수사를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8/22/202008220018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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