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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택]우리만 인내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조선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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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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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정책 냉·온탕 오갔지만 남북 관계 근본적 변화 없어
北 오만·불손과 南 '인내'라는 지금의 비대칭적 관계는 비상식적이기에 불편해
이제 북한 문제는 멀리 보고 국민 눈높이와 상식에 맞춰야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며칠 전 북한이 개성의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모습을 TV로 지켜보면서 '참 독특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뜻대로 일이 안 풀리는 경우 분노와 좌절감을 표출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이 있을 텐데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과거에 북한이 우리 대통령이나 미국 대통령을 향해 '삶은 소대가리' '노망 난 늙은이'라고 욕설을 퍼부었을 때도 북한의 외교적 표현의 격조와 남다른 '창의성'에 쓴웃음을 지은 적이 있다. 경험할수록 북한은 우리와는 정말 많은 면에서 '다른 나라'인 것 같다.

오래전부터 한국 사회에서 북한은 정치적·이념적 갈등의 원천이었다. 이른바 '남남 갈등'이다. 남남 갈등이 본격화된 건 김대중 정부에서 '햇볕정책'을 추진하면서부터였다. 한쪽에서는 유화정책을 '퍼주기'라고 비판했고, 다른 쪽에서는 강경 정책은 군사적 긴장을 고조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당시 햇볕정책은 반공주의에 갇혀 있던 상황으로부터의 급격한 변화라는 점에서, 또 첫 정권 교체 상황에서 추진되었다는 점에서 갈등의 발생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이 처음 햇볕정책을 추진했을 때 그 정책에 대한 지지는 대통령 자신에 대한 지지보다 높았다. 그 이후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고 정권 교체가 이뤄질 때마다 대북 정책도 '냉탕·온탕'을 오갔다. 그사이 국민은 유화정책에 대한 북한의 태도도, 적대 정책에 대한 북한의 반응도 모두 지켜보았다.

여러 가지 시도가 이뤄졌지만 지금 와서 보면 근본적으로 남북 관계가 바뀐 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가 아무리 거창한 계획을 갖고 있어도 그간의 경험을 되돌아보면 결국 미국과 북한의 입장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명백해 보인다. 남북 간 철도를 잇고 경제공동체를 이뤄서 남북 간의 평화 공존과 공동 번영을 이뤄내는 일이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하지만, 그것은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만 인내를 갖고 열심히 한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라는 걸 이제 모두가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일본이 수출 규제를 했을 때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 경제협력으로 평화 경제가 실현된다면 우리는 단숨에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다'고 말했을 때, 정말 그렇게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과연 현실적으로 '단숨에' 가능할까, 우리만 잘한다고 해서 될까 하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번의 연락사무소 폭파를 보면서 갖게 된 생각은 이제는 대북 문제에서 모두가 좀 차분해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임기 중 서둘러 뭔가를 이뤄내려고 하지 말고 장기적 관점에서 문제 해결을 추구하고,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상식적 수준에서 대북 정책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대통령이 입에 담을 수 없는 정도의 막말과 모욕을 듣고도 감내하는 모습은 전혀 상식적이지 않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군이 과도할 정도로 조심하는 모습도 상식에 어긋나 보인다. 북한의 오만, 불손과 우리의 '인내'라는 비대칭적 관계는 그래서 불편하다. 아무리 봐도 북한에 대한민국은 '수단적 존재'인 것 같은데 그러한 북한에 대해 과도한 환상과 기대를 갖고 있는 모습도 정상적 관계로 보이지 않는다. 이건 보수·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자존심의 문제이고, '국가와 국가 간' 관계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원칙이다. 그동안 일방적으로 북한에 끌려다닌 우리 대통령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가졌던 국민의 실망감과 답답함을 이해해야 한다.

이 말이 문재인 정부가 대북 정책 방향을 적대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정권에 따라 대북 기조는 다를 수 있다.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에서 북한에 대응하라는 말이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이 힘을 얻기 위해서라도 대다수 국민의 눈높이에서 북한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옳다. 과거에 김대중 대통령은 지도자는 국민보다 '반걸음'만 앞서나가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지금 대북 문제와 관련된 문 대통령의 대응은 국민의 눈높이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우리 사회의 상식과도 맞지 않는다.

그리고 문 대통령이나 여당이 북한에 대해 하는 만큼 야당이나 반대 의견을 가진 이들을 배려하고 인내하면 좋겠다. 정말 그런 정도의 인내심을 보일 수만 있다면 우리 사회의 정치적 갈등과 대립은 크게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대북 정책이 결실을 보기 위해서는 다름 아닌 우리 사회의 건전한 상식에 기반한 내부의 합의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제 곧 6·25 전쟁 70주년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21/202006210229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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