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턴 회고록 단독입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0일 오후 판문점에서 악수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를 바라보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0일 오후 판문점에서 악수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를 바라보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작년 6월 30일 오후 판문점 자유의집 앞에서 남·북·미 3자 정상이 만났을 때 청와대 관계자들은 “역사적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모두 문재인 대통령의 참여를 원하지 않았다고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회고록에서 주장했다.

회동 당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 측은 수 차례 문 대통령의 참석을 거절했지만, 문 대통령은 “일단 판문점 내 관측 초소까지 같이 가서 결정하자”며 동행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본지가 21일 사전 입수한 볼턴의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났던 방’ 중 한반도 관련 부분에 나오는 내용이다. 볼턴의 회고록은 23일 공식 출간 예정이다.
 
지난해 6월 30일 판문점 자유의집 앞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문재인 대통령이 나란히 서있다. /AP 연합뉴스
지난해 6월 30일 판문점 자유의집 앞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문재인 대통령이 나란히 서있다. /AP 연합뉴스


지난해 6월 판문점 미·북 정상 회동은 하루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 올린 ‘깜짝 제안’으로 이뤄졌다.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었던 트럼프는 “거기 있는 동안 북한의 김 위원장이 이 글을 본다면, 그저 악수를 나누고 안녕이라 말하기 위해 DMZ(비무장지대)에서 그와 만나겠다”고 썼다. 참모들 모두 놀랐다. 그 와중에 믹 멀베이니 비서실장 직무대행은 “곧 성사될 것 같은 김정은과 트럼프의 만남에 끼어들려는 문(문 대통령)의 시도도 상대해야 했다”고 볼턴은 회고했다.

볼턴은 “트럼프는 문 대통령이 근처에 없기를 바랐지만, 문 대통령은 완강하게 참석하려고 했고 가능하면 3자 회담으로 만들려고 했다”고 썼다. 그래서 미·북 정상의 만남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볼턴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분쟁이 모든 것을 망칠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다”고 했다. “왜냐하면 김정은도 문재인 대통령이 근처에 오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볼턴의 회고에 따르면 판문점 회담 당일인 6월 3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 측은 여러 차례 문 대통령의 참석을 거절했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이 한국 땅에 들어섰을 때 내가 없으면 적절하지 않게 보일 것이라면서 김정은에게 인사를 하고 그를 트럼프에게 넘겨준 뒤 떠나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끼어들어 “문 대통령의 생각을 전날 밤에 타진했지만 북한 측이 거절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나는 문 대통령이 참석하길 바라지만 북한의 요청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둘러댔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그간 대통령이 DMZ를 방문한 적이 많지만 미국 대통령과 한국 대통령이 함께 가는 것은 처음”이라며 계속 동행을 원했다고 볼턴은 회고했다. 트럼프는 “이 큰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며 “김정은에게 할 말이 있고 경호처가 일정을 조율하고 있어 그들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재차 거절했다. 트럼프는 “김정은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가 조금은 이해하는데 나를 보고 싶어 한다는 걸 안다”며 문 대통령에게 “나를 서울에서 DMZ로 배웅하고 회담 후에 오산공군기지에서 다시 만나도 된다”고 했다. 사실상 ‘3자 회동’을 거절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DMZ 내 관측 초소(OP 올렛)까지 동행한 뒤 그다음에 무엇을 할지 결정하자”고 말했다고 한다.

당시 문 대통령은 결국 판문점 자유의집까지 트럼프와 김정은을 안내하는 역할을 했다. 남·북·미 정상이 3자 회동을 한 시간은 4분 정도에 불과했지만, 당시 청와대는 “오늘 남·북·미 세 정상의 만남은 또 하나의 역사가 됐다”고 했다.

볼턴은 미·북 정상회담과 관련한 한국 정부의 개입을 비판했다. 특히 작년 2월 하노이 2차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되고 며칠 후 “정의용(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흥미로운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정 실장은 “김정은이 하노이에 올 때 (영변 핵 시설 포기와 모든 제재 해제라는) 한 가지 전략만 가져왔고 플랜 B가 없었다는 점에 놀랐다”고 말했다.

볼턴은 이어 정 실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정신분열적(schizophrenic)인 생각도 전했다”고 회고했다. 문 대통령이 “북한의 ‘행동 대 행동’ 방식을 거부한 것은 올바른 일이었다”고 했지만, “김 정은의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영변 핵 시설 폐기 의지는 매우 의미 있는 첫걸음으로서 비핵화가 돌이킬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든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는 것이다. 볼턴은 북한의 수많은 핵 시설 중 일부인 영변만 내놓겠다는 것이 ‘행동 대 행동’의 단계적 접근법인데, 행동 대 행동은 안 된다면서 영변 포기 의지는 높게 평가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21/202006210158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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