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허가취소 검토중인 '큰샘'… 이대로면 하반기 지원예산 끊겨
 

12일 오후 2시 서울 강남구 일원동 한 건물의 33㎡(10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학생들이 학습지를 풀고 있었다. 학생들은 직사각형 책상에 서로 마주 보고 앉아 문제를 풀다가 모르는 게 있으면 직원을 불러 질문하기도 했다. 이들은 탈북·다문화·저소득층 청소년들이다. 탈북자 단체인 '큰샘'은 2012년 7월부터 이곳에서 맞벌이 취약계층 청소년을 위한 '큰샘 방과 후 교실'을 운영해왔다. 탈북민 자녀 7명을 포함해 초·중·고교생 20명이 이곳을 찾아 숙제나 뒤처진 공부를 하고 있다. 최근엔 코로나 사태로 오전부터 교실을 열고, 학교에 나가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끼니를 챙겨주고 있다.
 
탈북 청소년 지원 단체인‘큰샘’의 박정오 대표가 1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통일부의 제재 결정을 비판했다.
탈북 청소년 지원 단체인‘큰샘’의 박정오 대표가 1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통일부의 제재 결정을 비판했다. /고운호 기자

이 교실이 조만간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 박정오 큰샘 대표가 페트병에 쌀을 넣어 조류를 통해 북한으로 보냈다는 이유로 최근 통일부가 이 단체에 대한 비영리법인 설립 허가 취소를 검토 중이기 때문이다. 이날 경찰은 통일부 고발에 따라 큰샘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박씨의 친형인 박상학(52)씨가 대표로 있는 탈북 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도 최근 대북 전단 살포를 이유로 큰샘과 함께 경찰 수사와 법인 취소 대상이 됐다.

큰샘은 통일부 산하 공공기관인 남북하나재단을 통해 매년 수천만원의 지원금을 받아왔다. 올해 큰샘에 배정된 지원금은 4185만원이지만, 1255만원은 아직 지급되지 않은 상태다. 남북하나재단 관계자는 "큰샘의 하반기 지원 여부는 내부 논의 중"이라고 했다.

박씨는 "하반기부터 예산이 끊길 것으로 본다"며 "학생들이 무슨 죄냐"고 했다. 그는 "학생들도 돌아가는 상황을 아는데, '쌀을 보내는 건 어렵고 힘든 사람 돕는 건데 그걸 왜 막느냐' '그게 왜 나쁘냐'라고 묻기도 한다"며 "여기가 서울인지 평양인지 헷갈린다는 말도 하더라"고 했다.

박씨는 북한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1999년 가족과 함께 탈북했다. 그는 지난 5년간 쌀이 담긴 페트병을 바다에 띄워 북한으로 보내는 활동을 해 왔다. 최근에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감안해 구충제와 방역 마스크도 넣어 보냈다고 한다. 박씨는 이번 정부의 조치에 대해 "아무런 경고도 없었다"며 "(쌀을 보내는 게) 법인 취소할 일이면 5년 전에 진작 했어야지, 제일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굶어 죽는데 거기(북한)에 쌀을 보내는 게 왜 잘못인가"라고 했다.

박씨는 "만약 지원이 끊겨도 어떻게든 교실은 꾸려나가고 싶다"고 했다. "아이들은 잘못이 없지 않습니까. 탈북자들이 대한민국 사회에 정착해서 잘살아가는 게 중요하고, 그중 첫째가 교육입니다. 지원이 끊겨도 방과 후 교실은 계속돼야 합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13/202006130002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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