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미국에 이례적 경고
김영철, '남북 통신선 차단'에 등장
'하노이 노딜' 이후 김여정과 나란히
"행동대장 세워 무력도발 예고" 관측
 
북한이 2017년 3월 18일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진행한 신형 고출력 로켓 엔진 분출 시험 모습/조선중앙방송 연합뉴스

북한 외무성이 11일 미국을 향해 "끔찍한 일을 당하지 않으려거든 입을 다물리"고 했다.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은 이날 조선중앙통신과 인터뷰에서 "미국의 이중적 행태에 막 역증이 난다"며 "미국이 쓸데없이 끼어들며 함부로 말을 내뱉다가는 감당하기 어려운 좋지 못한 일에 부닥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조선 하내비(할아버지)노릇까지 하다 남이 당할 화까지 뒤집어 쓸 필요가 있나"라고 했다.

올 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부터 친서를 받았다고 하자 북한이 "받은 적 없다"고 반발하긴 했지만, 미북정상회담 이후 미국을 향해 직접적으로 "끔찍한 화"를 당할 수 있다는 경고를 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북한이 미국을 향한 무력 도발을 준비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은 앞서 남북간 모든 통신연락선을 완전 차단하겠다고 밝힌 지난 9일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과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지시했다"고 전했다. 대남 강경파로 분류되는 김영철은 작년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당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그런 그가 남북통신선 차단 보도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동생 김여정보다 먼저 거론됐다.

이 때문에 김영철의 재등장이 북한의 도발을 예고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이런 가운데 북한이 미국을 향해 "끔찍한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입을 다물라"고 한 것이다.

◇장거리 미사일, SLBM 도발 가능성 나와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이에 대해 "북한이 김영철을 행동대장으로 세워 무력도발을 예고한 것"이라고 했다. 남 교수는 "남측이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도발을 하겠다는 뜻으로 강경 도발 이미지를 가진 김영철을 앞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대남총괄을 하는 김여정은 '여성'이기 때문에 무력도발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남 교수는 북한이 무력도발을 한다면 그 시기와 방법에 대해서는 "7월 이후로 장거리 미사일이나 3000t급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잠수함 진수 및 SLBM 발사 등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으로서는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에 대한 메시지도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이번에 무력도발을 한다면 단순히 동해상으로 단거리 탄도 미사일을 발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국을 겨냥한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전략 무기로 레드라인을 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지난달 주재한 당 중앙군사위 확대회의에서 '핵전쟁 억제력 강화' '격동 상태 논의' 등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는 언제든 핵 미사일 도발을 할 수 있는 준비를 끝내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김정은은 작년 연말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세상은 머지않아 공화국이 보유하게 될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당시 '새로운 전략 무기'란 다탄두(多彈頭)를 장착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신형 SLBM, 3000t급 신형 SLBM 잠수함 등으로 추정됐다. 국정원은 지난 6일 "함경남도 신포 조선소에서는 고래급(신포급) 잠수함과 수중 사출(射出) 장비가 지속적으로 식별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군 주력인 로미오급(1800t)을 개량해 3000t에 육박하는 크기로 추정된다. 북한은 여기에 세 발의 북극성-3형 SLBM을 탑재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조선일보DB

김영철은 천안함 피격 사건, 연평도 포격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는 정찰총국 수장을 지냈다. 김영철은 당시 정찰총국장이었던 2013년 3월 조선중앙TV에 출연해 정전협정 백지화를 이야기하면서 "누르면 발사하게 돼 있고 퍼부으면 불바다로 타 번지게 돼 있다"는 이른바 '불바다' 발언을 해 논란을 일으켰다.

김영철은 2018년 6월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에 이어, 작년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준비도 주도했으나, 작년 6월 남·북·미 판문점 회동 때는 수행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당시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에 따른 문책성 인사라는 평가가 많았다. 김영철은 현재 정치국 위원과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 직책을 갖고 있다.

남북 통신연락선 차단은 김여정이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맹비난한 지난 4일 담화에서 비롯됐다. 북한 통일전선부는 지난 5일 대변인 담화에서 "할 일도 없이 개성공업지구에 틀고 앉아 있는 북남(남북) 공동 연락사무소부터 결단코 철폐(폐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담화에선 "우리 인민의 격해진 감정을 담아 김여정 제1부부장이 지난 4일 담화를 냈다"고 언급했지만, 김영철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이 보도에선 "8일 대남사업부서들의 사업총화회의에서 조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김영철 동지와 조선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김여정 동지는 대남사업을 철저히 대적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며 "먼저 북남 사이의 모든 통신 연락선들을 완전 차단해버릴 데 대한 지시를 내렸다"고 전했다. 통전부 5일 담화에선 김여정이 대남사업을 총괄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총괄' 김여정보다 김영철이 먼저 언급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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