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9일 김여정과 천안함 폭침 주범인 김영철 지시로 "대남 사업을 철저히 대적(對敵) 사업으로 전환한다"며 남북 간 모든 통신선을 차단했다. 청와대와 노동당 핫라인도 끊었다고 한다. 김여정이 탈북민의 대북 전단 발송을 맹비난한 지 닷새 만에 "죗값 계산"이라며 내린 조치다. 이날 "첫 단계 행동"이라고 한 만큼 남북 연락사무소 폐쇄 같은 추가 행동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김여정이 4일 '전단 금지법'을 만들라고 하자마자 통일부는 "준비 중"이라고 했다. 여당 의원들은 서로 '김여정 하명법'을 만들겠다고 했다. 평통 수석부의장은 우리 국민의 대북 전단을 막는 데 "군 병력을 동원해야 한다"고도 했다. 동료 탈북민 의원들을 "우리 사회에 적응이 안 된 사람"으로 깎아내린 여당 의원까지 나왔다. 정부 여당이 일제히 김여정 요구를 이행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도 북은 연일 대남 비난 강도를 높이고 있다. 대규모 군중대회에선 한국 전체를 적으로 몰기도 했다. 대북 전단은 핑계일 뿐이고 진짜 의도는 다른 데 있다고 봐야 한다.

김정은이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평양 시민 생활 보장'을 이례적으로 언급했다. 김씨 정권을 떠받치는 핵심 계층이 사는 평양도 경제난이 심각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올 초 코로나 때문에 북·중 국경을 봉쇄해 대중 무역이 80% 이상 급감했다고 한다. 여기에 유엔 대북 제재까지 겹쳐 있다. 평양 주민들까지 생활고를 겪게 된다면 북한 정권 입장에선 내부 단속이 필요해진다. 한국과의 긴장을 높이는 것이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그러다 문재인 정부가 대북 전단 금지법을 만드는 등으로 자신들의 요구를 이행하면 전격적으로 대화를 제안할 가능성이 있다. 그 목적은 대규모 '대북 지원'일 것이다.

문 정부는 '김정은 비핵화 의지'를 선전하며 미·북 이벤트를 주선하고 남북 정상회담을 열었다. 그러나 김정은이 직접 "비핵화는 영원히 없을 것"이라고 하더니 얼마 전에는 "핵전쟁 억제력 강화"를 공언했다. '남조선에 보내는 경고'라며 핵 탑재용 신형 미사일을 열 번 넘게 쐈다.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라는 것은 애초에 있지도 않은 것이다. 세계에 핵실험을 한 나라 중 핵을 포기한 나라는 하나도 없다. 가진 게 핵밖에 없는 집단이 선의로 핵을 포기한다는 것은 동화에나 나올 얘기다.

그래도 문 정부는 항의는커녕 총선에서 압승하자 철도 연결, 관광 재개 등 대북 지원책을 쏟아냈다. 천안함 폭침에 대응한 5·24 제재까지 "실효성이 상실됐다"며 북 도발에 면죄부를 줬다. 그렇게 김정은 심기를 살핀 결과가 "남(南)은 적(敵)"이다. 사실 북한 김씨 정권에 한국이 적이 아닌 적이 없었다. 평화 공세와 유화 전술은 자신들의 필요에 따른 전략일 뿐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결국 한국민에게밖에 쓸 수 없는 핵을 왜 만들었겠나. 어떻게 군함을 폭침하고 민간인에게 포격할 수 있나. 상대의 선의에 기댄 안보란 있을 수 없다. 지금이라도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09/202006090438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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