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가 북한 김여정의 대북 전단 봉쇄 요구에 즉각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응한 것에 대해 여권 인사들이 일제히 옹호하고 나섰다. 통일부 장관 출신인 평통 수석부의장은 "북은 최고 존엄에 대한 도전을 묵과할 수 없다"고 했다. 북의 사정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이 우리 대통령을 겨냥해 '삶은 소대가리' '겁먹은 개' '못 본 척하는 놈' '저능' '바보'라고 하는 건 괜찮지만 김정은에 대해서는 어떤 비난도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한 여당 의원은 "전단 살포는 쓰레기 대량 투기 행위와 같다"고 했다. 전직 대통령 아들인 다른 의원은 "(김여정의 비난은) 협박이 아니라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신호"라고 했다. 국내의 다른 사람들은 잔인할 정도로 짓밟고 심지어 같은 당 내 이견 하나도 끝까지 보복하는 사람들이 북에 대해서는 모든 걸 이해하고 포용한다.

대북 전단을 둘러싼 문재인 정부의 대응은 이 정권 사람들이 북한 집단에 어떻게 길들어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전단 살포가 접경 지역 우리 주민들을 불안하게 한다면 그것은 살포를 공개로 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만 계도하면 해결될 일이다. 그러나 김여정이 '전단 금지법 만들라'고 발끈한 지 4시간 만에 통일부가 마치 하명을 받들듯 바짝 엎드린 것은 김정은 남매의 '진노'를 무마하는 게 최우선이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격과 자존감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정권은 대북 저자세를 넘어 북과 심리적으로 동조화돼 있다. 북한 입장에서 문제를 살피고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80년대 운동권의 '내재적 접근법'에 매몰돼 있다. 그러니 3대 세습 독재도, 무자비한 인권 탄압도, 우리 생명을 위협하는 핵·미사일 개발도 다 이해하려 한다. 이 정권 통일부 장관은 "억지력 강화가 김정은의 새로운 길"이라며 북의 핵·미사일 개발이 '자위 수단'이라는 북 논리를 그대로 옮겼다. 청와대는 북 미사일 발사에 "강한 유감"이라고 했다가 김여정이 "주제넘다"고 한 소리 하자 다음 도발 때부터 입을 다물었다. 국방부는 북이 고사총으로 우리 GP를 명중시킨 뒤 아무 해명도 안 했는데 알아서 "고의는 아닐 것"이라고 감쌌다. 북이 화낸다고 F-35 도입 행사도 쉬쉬하며 했다. 평창올림픽 때 북이 '남측 언론 보도'를 문제 삼자 정부는 "비판적 보도를 자제해달라"고 했다.

외교부는 북이 민감해하는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에서 11년 만에 공동제안국에서 빠졌다. 동해로 넘어온 탈북 어민 두 명은 북이 송환을 요구하기도 전에 강제 북송해 국제 인권 단체들이 우려를 표하는 일도 있었다. 인권 변호사 출신이 대통령이고 인권 전문가가 외교 장관인 정부에서 '북한 인권'은 금기어 취급을 받는다. 우리 축구 대표팀이 평양에서 무관중·폭력 경기를 겪었는데도 통일부 장관은 "북 나름의 공정한 조치라는 해석도 있다"고 했고, 비행기로 5시간이면 갈 거리를 66시간 동안 열차로 이동하는 김정은의 기이한 행동에 청와대 비서관은 "탁월한 판단과 선택, 역사에서의 사열"이라고 했다. 여당 소속 지자체장은 한국에서 했으면 아동 학대라고 했을 북한 집단 체조를 보고 "대단하다"고 감탄했고, 여당 중진은 "북한 주민은 부러움 없이 살고 있다"고 했다. 북한과 동일체가 된 것이나 다름없다.

남북 관계에서 전략적으로 북을 달래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차원이 아니다. 북을 내재적으로 이해하고 그들 사고방식대로 생각하게 되고 이제는 북이 원하면 그대로 이행하거나 그 전에 알아서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행정부·사법부·입법부·지방 권력을 모두 장악한 정권이 북한 의도 그대로 법을 만들겠다고 한다. 그런데도 나라에 제어 장치 하나 없다. 한국 정권 길들이기에 성공했다고 확신하는 김정은 남매의 요구는 이어질 것이다. 전단 봉쇄 요구는 시작일 뿐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05/202006050421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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