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동생 김영주에 黨조직지도부 맡겨 통치
제1부부장 김여정, 사실상 조직지도부장 역할

최근 해프닝으로 끝난 ‘김정은 건강이상설’ 논란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버금가는 주목을 받은 인물이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었다. 올해 들어 본인 명의의 대남·대미 담화를 발표하는 등 당내 위상이 급격히 강화된 상황에서 김정은 유고시 후계 문제와 맞물려 많은 언론과 북한 전문가들이 각종 분석을 쏟아낸 것이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도 지난 11일 펴낸 보고서에서 ‘김정은 건강이상설’ 논란 당시 가장 많이 언급된 연관어가 김여정이었다고 밝혔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제1부부장/노동신문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제1부부장/노동신문

상당수 전문가들은 김정은·김여정의 관계를 과거 김일성과 그의 동생 김영주의 관계와 유사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김일성은 국정 전반을 챙기고, 동생 김영주에게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직을 맡겨 당을 관리하던 방식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김영주는 김일성의 둘째 동생으로 일제시대 만주에서 일본군 통역관을 지냈다. 광복 이후 서울에 은신해 있던 김영주를 김일성이 찾아 평양에 불러들였다고 한다. 모스크바 유학을 다녀온 김영주는 1954년 노동당 핵심부서인 조직지도부에서 당 사업을 시작했고, 1960년부터 1973년까지 조직지도부장을 지냈다.

노동당 조직지도부는 ‘수령의 유일영도체계’를 구현하는 핵심 부서로 당·정·군 모든 간부들에 대한 인사권과 검열권을 가진 막강한 조직이다. 과거 김일성은 조직지도부장에 친동생인 김영주, 이어 아들인 김정일을 임명했고, 김정일은 집권 이후 당 조직지도부장 자리를 비워두고 자신이 직접 조직지도부를 지휘했다.

김영주는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발표 때 김일성을 대신해 서명하는 등 대남 사업에도 깊이 관여했다. 1973년 8월엔 남북조절위원회 북측 위원장 자격으로 김대중 납치사건과 관련해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경질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김영주는 김일성에게 ‘수령’의 호칭을 처음 붙이고 ‘당의 유일사상체계10대원칙’을 만드는 등 형 우상화에 앞장섰다. 이런 노력으로 한때 김일성의 후계자로 거론됐다. 그러나 1974년 김정일과의 경쟁에서 밀려 자강도 산골에 유배됐다가 1993년 평양에 복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동안 공개 석상에 나오지 않다가 2014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 참석한 모습이 공개됐다.
김영주가 2014년 최고인민회의대의원 선거에 참석한 모습/조선중앙tv
김영주가 2014년 최고인민회의대의원 선거에 참석한 모습/조선중앙tv

김여정은 지난해 연말 열린 당중앙위 전원회의에서 당중앙위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면서 이목을 집중시켰다. 김여정은 당중앙위 전원회의 이전에도 당중앙위 제1부부장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김여정이 당중앙위 제1부부장이란 직위를 유지한 채 담당 부서를 이동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 나왔다. 기존 담당 부서는 선전선동부로 알려졌으나, 조직지도부로 자리를 옮겼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었고, 현재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더구나 지난 2월 당중앙위 전원회의에서 당 조직지도부장이었던 리만건이 해임된 뒤로는 김여정이 사실상 당 조직지도부장직을 대행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김여정이 사실상 당 사업을 총괄하면서 과거 김영주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실제 김여정은 지난 3월 자신의 명의로 대남 담화를 발표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친서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는 등 ‘달라진 위상’을 과시했다.

곽길섭 원코리아센터 대표도 “지난 2월 리만건 조직지도부장이 부정부패 혐의로 해임되면서 김여정이 당 조직지도부의 최고실세로 부상한 것으로 보인다”며 “김정은과 김여정의 관계는 정서적·정치적 동지관계”라고 했다.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최근 김여정이 당 조직지도부를 장악하고 당 정치국 후보위원에 임명되는 등 정치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김영주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김정은·김여정 관계가 김일성·김정일 관계를 연상시킨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정일의 경우 1973년에 당 조직지도부장, 1974년 김일성의 후계자로 내정되면서 ‘당 중앙’으로 불렸다. 이어 1980년 6차 당 대회에서 정치국 위원, 정치국 상무위원, 당 중앙 군사위원으로 선출돼 후계자로 공식 지명됐다. 김여정도 ‘후계자 김정일’의 길을 걸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위 탈북자 A씨는 “김정은·김여정 남매가 백두혈통 운명공동체인 것은 맞지만 가부장적인 북한 체제에서 김여정의 역할은 김정은 아들이 성장할 때까지 권력 누수를 막는 데 있을 것”이라며 “김여정은 제2의 김영주가 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5/13/202005130273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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