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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경 밀입북 왜 뺐나, 대답 못하는 외교부
조선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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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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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전 기밀 외교문서 24만여쪽 공개했는데…]
"개인사 비공개… 그런 문서 있나" 160쪽 문서 있는데도 말돌리기만
 

임수경(왼쪽) 전 의원이 1989년 방북 당시 평양에서 북 주민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 오른쪽은 임씨를 북에 보낸 혐의로 구속 수감되는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당시 전대협 의장).
임수경(왼쪽) 전 의원이 1989년 방북 당시 평양에서 북 주민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 오른쪽은 임씨를 북에 보낸 혐의로 구속 수감되는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당시 전대협 의장). /조선DB

정부가 31일 작성된 지 30년이 지나 기밀 해제된 1989년도 외교문서 1577권(약 24만쪽)을 공개하면서 당시 최대 관심사인 '임수경 밀입북 사건'을 비공개해 논란을 자초했다. 외교부는 이날 장문의 보도 자료를 통해 "국민의 알 권리 신장과 외교행정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외교문서를 적극 공개한다"면서도 이 사건을 비공개한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야권에선 "총선을 앞두고 현 정권 핵심 인사들의 '친북 행적'이 재조명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가 꼼수를 썼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부는 '연례 외교문서공개 제도'에 따라 1994년부터 30년이 지난 외교문서를 기밀 해제해 국민에게 공개하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임수경 밀입북 사건을 비공개한 데에 대해 "임수경 방북은 1989년 6월 있었지만 그 이후 후속 상황이 있어 비공개한 걸로 안다"고 했다. 1989년 당시 종결되지 않고 '현재 진행형'이던 사건이라 일단 비공개 결정했다는 취지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에는 동구권 국가들과의 수교 비화 등 1989년 시작돼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사안이 대거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이날 오후 외교부 브리핑에서도 논란이 됐다. 질문이 쏟아지자 외교부 당국자는 "비밀 방북했는데 외교문서가 있을까? (문서가) 생성됐나 모르겠다"고 했다. 문서가 없을 수도 있다는 투였다. '없다는 건가, 있는데 공개 안 한다는 건가'란 후속 질문에 이 당국자는 "(임수경이) 방북해서 서울 돌아왔지 않느냐. 외국 정부와 나눈 대화가 문서로 남아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외교부의 '유체이탈 브리핑' 직후 비공개 처리한 '임수경 밀입북' 문건이 160여쪽에 달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당국자는 이날의 최대 관심사에 대해 기본적인 사실관계도 확인하지 않았거나, 알고도 모른 척한 것이다.

이후 외교부는 "개인 신상에 관한 내용이라 비공개했다"는 해명도 내놓았다. 하지만 국회의원을 지낸 공인에 대해 '개인 신상' 운운한 것 자체가 궁색한 변명이란 지적이다. 같은 논리대로라면 작년 외교부는 'KAL기 폭파범' 김현희에 대한 문서를 공개하지 말았어야 한다. 취재진 사이에선 "외교부가 하루 종일 말 돌리기만 한다"는 말이 나왔다.

1989년 한국외대 4학년이었던 임 전 의원은 전대협 의장인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지시로 그해 6월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평축)에 전대협 대표로 참석했다. 상식적인 '서울→베이징→평양' 경로가 아닌 '서울→도쿄→서베를린→동베를린→모스크바→평양'의 우회 루트를 이용했다. 외교 소식통은 "우리 해외 공관들이 임수경 동선을 추적·파악한 흔적, 외교관들의 대외 첩보 수집 및 여론전 관련 기록들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외교부는 이 사건과 직결된 문서는 감췄지만, 간접적으로 관련 있는 문서는 일부 공개했다. 주로 북한의 우방인 중남미·아프리카 정부 관리들이 임 전 의원을 구속한 한국 정부를 비방했다는 내용이다.

한편 이번에 기밀 해제된 문서를 통해 노태우 정부가 동유럽 국가들과 수교하기 위해 거액의 차관을 건넨 사실이 확인됐다. 노태우 정부가 일왕(日王) 초청 방안을 일측과 적극 검토한 과정도 공개됐다. 정부는 1989년 6월 노 대통령의 이듬해 방일을 준비하면서 아키히토(明仁) 당시 일왕의 방한을 고려할 것을 외교 과제로 제시했다. 일본도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이후 한국에서 과거사 청산 요구와 함께 반일 여론이 높아지고, 일본에서도 보수 우경화 흐름이 뚜렷해지면서 '없던 일'이 됐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4/01/202004010034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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