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보면서 나도 평양에 갔으면 저렇게 만났을텐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

이산가족 상봉 방북단 선정후보 101번째로 예비 1순위였으나 ‘아름다운 양보’로 북한에 가지 못한 우원형(우원형·65·서울 잠원동)씨. 이산 가족들이 상봉한 15~17일 자신이 경영하는 회사에서 일하다가도 짬만 나면 TV,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고, 신문을 꼼꼼히 읽으며 다음 이산가족 상봉이 어떻게 될지 신경을 곤두세웠다.

우씨는 “장이윤씨에게 양보한 것은 지금도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 전에 어쩌면 한번쯤 이산 가족들이 상봉할 기회가 더 생길 수 있겠다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는데, 실현 가능성이 있을 것 같으냐”고 기자에게 물었다.

이산 가족들이 첫 상봉한 지난 15일. 특수 전구 생산업체인 대성필라멘트 사장인 우씨는 두 아들 등 직원 30여명과 함께 경기도 양주군 은현면 선암리 공장에서 묵묵히 일만 했다. 최근 국내외에서 주문이 쇄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남 병희(부사장)씨는 “아버지는 평소 말씀이 적은 편인데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TV로 보고 난 뒤에는 부쩍 더 그러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부산에 사는 장이윤(72)씨의 노모(109)가 사망한 것으로 확인돼 규정대로라면 100번째로 이번 방북단에 포함될 예정이었으나 ‘돌아가신 어머니의 산소라도 찾아보고 싶다’는 장씨의 간곡한 부탁에 방북길을 양보했다.

/임형균기자 hy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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