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김정은에 생일축하 메시지" 김계관 "美서 직접 받아 南만 몰라"
외교소식통 "한미간 소통 더 문제"… 文대통령, 내일 또 남북협력 제안
野 "文정권의 지독한 북한 짝사랑"
 

청와대는 12일 김계관 북한 외무성 고문이 '멍청한 생각' '바보 신세'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남조선은 (미국과의 협상에) 끼어들지 말고 자중하라"고 맹비난한 데 대해 아무런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에 대해 낼 입장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안보 부처 내부에선 곤혹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미·북 간 친서가 오갔다는데 청와대는 '축하 메시지 전달 역할을 했다'고 자랑했다가 망신만 자초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일 신년사에서 "김정은 위원장 답방 여건이 하루빨리 갖춰지도록 남북이 함께 노력하자"며 내놓은 남북 철도 연결 등 '5대 제안'도 북한이 사실상 걷어찬 것으로 해석됐다. 문 대통령은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남북 협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우리를 조롱하며 모든 대화와 제안을 거부하는데도 또다시 일방적 대북 제안을 하겠다는 것이다. 야권에선 "문재인 정권의 지독한 북한 짝사랑"이라고 비판했다.

◇文 대통령 신년사 걷어찬 北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0일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 생일(1월 8일) 축하 메시지를 문 대통령이 전해주면 좋겠다고 했고, 이후 (9일 북에) 전달됐다"고 말했다. 그런데 김계관은 이를 직접 반박하면서 문 대통령의 신년 제안까지 사실상 거부했다.
 
정의용 “트럼프한테 부탁받았다”… 김계관 “트럼프한테 직접 받았다” -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10일 방미 일정을 마친 뒤 인천국제공항에서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왼쪽). 정 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 생일 축하 메시지를 문재인 대통령이 전달해주면 좋겠다는 당부를 했다”고 말했지만, 하루 뒤 김계관 북한 외무성 고문은 “생일 축하 인사를 미 대통령 친서로 직접 전달받은 상태”라고 반박했다. 오른쪽 사진은 김계관이 2000년대 후반 6자회담 수석대표 시절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발언하는 모습.
정의용 “트럼프한테 부탁받았다”… 김계관 “트럼프한테 직접 받았다” -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10일 방미 일정을 마친 뒤 인천국제공항에서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왼쪽). 정 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 생일 축하 메시지를 문재인 대통령이 전달해주면 좋겠다는 당부를 했다”고 말했지만, 하루 뒤 김계관 북한 외무성 고문은 “생일 축하 인사를 미 대통령 친서로 직접 전달받은 상태”라고 반박했다. 오른쪽 사진은 김계관이 2000년대 후반 6자회담 수석대표 시절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발언하는 모습. /연합뉴스·뉴시스

김계관은 "남조선 당국은 조·미 수뇌들 사이에 특별한 연락 통로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아직 모르는 것 같다"며 "남조선 당국이 흥분에 겨워 온몸을 떨며 대긴급 통지문으로 알려온 미국 대통령의 생일 축하 인사라는 것을 우리는 미국 대통령의 친서로 직접 전달받은 상태"라고 했다. 그러면서 "남조선의 호들갑" "중재자 역할을 해보려는 미련" "본전도 못 챙기는 바보 신세"라는 자극적인 표현을 써가며 우리 정부를 비난했다.

당초 청와대는 정 실장 발언과 관련,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 정부에 '메신저' 역할을 맡겼다"며 고무된 분위기였다. 하지만 북한이 공개적으로 힐난하고 면박을 주면서 입장이 난처해졌다. 미국이 직접 '김정은 생일 축하' 친서를 전달했는데, 이것도 모르고 호들갑을 떤 모양새가 된 것이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은 "미측이 트럼프 친서를 북한에 따로 전달했다는 사실을 한국에 알려줬다면 정 실장 발언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라며 "정 실장이 알면서 그리 말했다면 더 큰 문제"라고 했다. 비핵화 협상에서 우리 정부 입지가 더 좁아진 것은 물론이고 미국과 소통에도 문제가 생겼다는 지적이다.

북한이 "나서지 말라"며 찬물을 끼얹으면서 남북 협력에 박차를 가하려던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 구상도 꼬이게 됐다. 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언급한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남북 철도·도로 연결은 물론 접경지역 협력, 도쿄올림픽 단일팀 구성, 6·15 남북 공동선언 20주년 행사 등은 추진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정부 당국자는 "대통령이 남북 간 '운신의 폭'을 넓히겠다고 했는데,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며 "북이 남측을 향한 원망과 서운함을 삭이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北 '통미봉남'에 우리만 일방적 러브콜

김계관 담화를 두고 외교가에선 "우리 정부가 희망적 사고에 젖어 트럼프 대통령의 의례적 '생일 축하' 덕담을 확대 해석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하노이 회담 결렬 직후에도 우리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귀국길에 문 대통령에게 거듭 중재 역할을 요청했다'고 했었는데 미국과 북한 기류는 달랐다"며 "북한이 남북 이슈로는 꿈쩍도 않는 상황에서 한국은 '미국의 메신저' 역할을 원하는 것"이라고 했다.

북한이 최근 '통미봉남(通美封南)' 기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데 우리 정부만 일방적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정은은 작년 4월 문 대통령을 향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촉진자 행세하지 말라"고 했고, 10월 금강산 시찰 때는 "보기만 해도 기분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싹 들어내라"고 했다. 북한 조평통은 작년 8월 문 대통령의 '남북 평화 경제' 구상과 관련,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이라고 했다.

자유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은 이날 "혼자 김칫국만 마시는 우리 정부의 짝사랑도 이 정도면 중증"이라며 "얼마나 더 모욕을 당하고, 국민 자존심이 짓밟혀야 짝사랑을 그만둘 텐가"라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1/13/202001130010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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