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전역 타격 ICBM, 족집게 신형 미사일로 무장한 북한
기존 3축 체계, 美 증원군 의존하는 작계로는 대응 어려워
지나치게 정권과 북한 눈치 봐 얻은 '홍길동' 오명 벗어야
 

유용원 군사전문기자·논설위원
유용원 군사전문기자·논설위원

북한 내 핵시설 사찰 요구가 거셌던 1992년 1월 한·미 양국은 '팀스피릿(Team Spirit)' 훈련 중단을 발표했다. 팀스피릿은 한때 서방 세계 최대의 야외 기동훈련으로 불렸던 대규모 연합훈련이었다. 그만큼 북한이 강력 반발하며 예민한 반응을 보였던 존재였다. 당시 한·미 양국은 대화 국면 조성을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한·미 양국은 1년 뒤인 1993년 1월 팀스피릿 훈련을 다시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에 대한 추가 사찰 요구를 거부하는 등 비협조적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같은 해 3월 1991년보다는 축소된 규모로 팀스피릿 훈련이 재개됐고, 훈련 기간 중 북한은 NPT 탈퇴를 선언했다. 1차 핵위기였다.

26년 만의 데자뷔 한·미 연합훈련 중단

팽팽한 줄다리기 끝에 북한이 1994년 2월 IAEA 핵사찰을 수용하기로 하자 한·미 양국은 그해 3월 다시 팀스피릿 훈련 조건부 중단을 발표했다. 그해 10월 미국과 북한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기본 합의문(Agreed Framework)을 체결하면서 팀스피릿 훈련은 폐지 수순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 뒤에도 북한은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았고, 6차례 핵실험과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를 통해 미 전역을 핵탄두로 타격할 능력까지 갖게 됐다.

이런 양상은 2018년 이후에도 '데자뷔'처럼 벌어지고 있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지시로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은 중단 상태다. 팀스피릿 훈련 중단의 경우처럼 북한 비핵화 협상 촉진을 지원한다는 이유에서다. 키 리졸브, 독수리, 을지프리덤가디언 등 이른바 3대 연합훈련이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난해 이후 양국 군의 연합훈련은 대대급 이하에서만 이뤄지고 있다. 한·미 군 수뇌들은 대규모 연합훈련 중단에 따른 공백이 없도록 보완책을 마련했다고 하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믿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대규모 연합훈련 중단에도 북한의 신형 전략·전술무기 개발은 중단 없이 계속돼 왔던 것으로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5~8월 북한은 한·미 미사일 방어망을 피할 수 있는 '북한판 이스칸데르' 미사일, 세계 최대 600㎜급(級) 초대형 방사포 등 신종 무기들을 4종류나 잇따라 선보였다. 이들 무기는 우리 군의 '전략무기'인 F-35 스텔스기가 배치된 청주 기지, 육·해·공 3군본부가 있는 계룡대, 주한미군의 두뇌이자 심장부인 평택·오산 기지를 정밀 타격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실체 드러낸 김정은의 '새로운 길'

게다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020년 새해 첫날부터 핵·미사일 모라토리엄(실험·발사 유예) 파기 카드를 던지면서 우리나라와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를 위협했다. 지난해 '하노이 노딜' 이후 김정은 스스로 정한 '연말 시한'이 지나자마자 1년 전부터 미국에 경고해온 '새로운 길'의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김정은은 지난해 12월 31일까지 나흘간 이어진 노동당 중앙위 제7기 5차 전원회의 '보고'에서 "우리 인민이 당한 고통과 억제된 발전의 대가를 받아내기 위한 충격적인 실제 행동으로 넘어갈 것"이라며 "세상은 머지않아 공화국이 보유하게 될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과 북한은 지속적인 핵무력 건설도 천명했다. 필자가 칼럼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북한의 핵무기고, 즉 핵무기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북한의 핵무기는 올해 말까지 최대 60~100기 이상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김정은과 북한이 아니라 한국군이야말로 '새로운 길'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다. 이제 우리는 단·중·장거리 탄도미사일로 한국군과 주한·주일미군 기지, 괌·하와이는 물론 미 본토 전역을 핵탄두 미사일로 타격할 수 있는 북한, 과거의 명중률 떨어지는 구형 단거리 미사일(스커드) 대신 수m의 정확도로 한·미 양국군의 심장부를 때릴 수 있는 신형 단거리 미사일·유도 방사포로 무장한 북한과 맞서게 됐다.

3重 쓰나미에 휩쓸린 육군

북한 핵·미사일에 대응한 구태의연한 이른바 3축 체계, 대규모 미 증원(增援) 전력에 크게 의존하는 전면전 작전계획 5015 등 기존 작전개념과 계획으로는 세계 5~6대 군사 강대국 수준의 전략무기들을 보유하게 된 북한을 상대할 수 없다. 정부와 군 당국은 과거 정부보다 많은 국방비 및 전력증강비를 투자, 첨단무기 등으로 북한의 증대되는 위협에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수많은 전사(戰史)가 입증하듯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한국군 중 가장 비중이 큰 육군은 2018~2022년 5년간 11만8000명의 병력 감축, 복무기간 18개월로 단축, 종교적 병역 거부 등에 따른 대체복무 허용 등 이른바 '3중(重) 쓰나미'에 휩쓸려 있다. 월급 대폭 인상, 일과시간 후 휴대폰 허용 등으로 상징되는 현 정부의 '병사 지상주의' 때문에 부사관·초급 장교 등 간부들에 대한 예우와 처우는 상대적으로 소홀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방부는 대규모 병력 감축 및 복무기간 단축에 따른 전력 공백을 부사관·군무원 등 직업군인 증원(增員)으로 메우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육군 하사 충원율은 2014년 90.9%에서 2018년 72.8%로 4년 만에 18.1%포인트나 감소했다.

이런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한 한국군의 '새로운 길'은 첨단무기 도입 등 하드웨어 개선도 필요하지만 정신자세 등 소프트웨어를 고치는 것부터 서둘러야 한다. 지나치게 정권과 북한의 눈치를 봐 얻게 된 '홍길동군(軍)'이라는 오명부터 씻어내야 할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1/07/2020010703909.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