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신년사]

北 도발협박·국정원의 비핵화 회의적 보고에도 대북 5대 제안
北 "남조선 당국자의 과대망상" 김연철 통일엔 "몽유병 환자"
 

문재인 대통령은 7일 신년사에서 미·북 간에 교착된 비핵화 협상이나 북한의 최근 도발 움직임에 대해선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남북 관계에 속도를 내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답방 여건을 만들겠다고 했다. 비핵화나 한·미 관계보다 '남북 관계가 우선'이라는 뜻을 명확히 한 것이다. 북한은 도발을 예고하고 미국도 우려하는 상황을 무시한 채 '오로지 북한'이란 정책 방향만 강조하며 마이웨이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가정보원조차 "북한이 비핵화 협상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한 상황에서 이 같은 신년사가 나온 것을 두고 대통령에 대한 정보 보고 체제에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제기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청와대 신년사 발표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문 대통령은 “올해는 ‘6·15 남북 공동선언’ 20주년”이라며 “김정은 위원장 답방을 위한 여건이 하루빨리 갖춰질 수 있도록 남과 북이 함께 노력하길 바란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청와대 신년사 발표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문 대통령은 “올해는 ‘6·15 남북 공동선언’ 20주년”이라며 “김정은 위원장 답방을 위한 여건이 하루빨리 갖춰질 수 있도록 남과 북이 함께 노력하길 바란다”고 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미국의 대북 제재 기조로 실행하지 못했던 대북 제안들을 대거 쏟아냈다. "남북 관계에서 운신 폭을 넓히겠다"고 했던 지난 2일 신년 인사회보다 더 나간 구체적 제안이었다. 문 대통령은 ▲접경 지역 협력 ▲2032년 남북 올림픽 공동 개최와 도쿄올림픽 단일팀 ▲비무장지대 국제평화지대화 ▲남북 철도·도로 연결 등을 거론했다. 이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노력도 계속해갈 것"이라고 했다. 남북 철도·도로 연결이나 개성공단, 현금이 지급되는 금강산 관광은 대북 제재 위반 여지가 있다.

북한은 제재 완화를 강력히 요구했지만, 미국의 '선(先)비핵화' 방침으로 길이 막히자 대북 제재 완화 요구를 사실상 거둬들였다. 이처럼 북한이 협상보다는 '도발'을 예고하고, 문 대통령과 한국 정부에 대해 막말을 하는 국면에서 문 대통령은 남북 관계 개선과 김정은 답방이라는 '정세 돌출적' 카드를 꺼낸 것이다.

북한은 이날도 선전 매체 메아리를 통해 문 대통령을 '남조선 당국자'로 지칭하며 "아전인수 격의 자화자찬과 과대망상적 내용으로 일관돼 있는 대북 정책 광고 놀음은 듣기에도 역겹기 그지없다"며 대남 비난을 이어갔다. 우리민족끼리TV도 이날 "지난 한 해 빈둥거리며 헛된 세월을 보낸 남조선 통일부 장관이 새해에 들어서며 염치도, 지각도 없는 핫바지 장관의 잠꼬대 같은 넋두리라는 드센 비난을 받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김연철(통일부 장관)을 비롯한 남조선 당국자들의 행적을 보면 외세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구걸과 생색내기, 접대와 봉사밖에는 한 것이 없다"고 했다. 북한은 김 장관을 향해 "몽유병 환자" "가엾은 처지"라고도 했다.

문 대통령에게 국정원이나 외교부, 국방부 등 안보 부처의 보고가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지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국정원은 최근 국회에 연말 북한 노동당 전원회의 보고 등을 분석한 결과를 보고하면서 "북한이 제재와 핵을 교환하는 방식의 협상은 불가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북·미 대화 교착 속에 남북 관계의 후퇴까지 염려되는 지금, 남북 협력을 더욱 증진시켜 나갈 현실적 방안을 모색할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졌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북·미 대화의 성공을 위해 노력해 가겠다"고 했지만, '북한 비핵화'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았다.
 
문 대통령의 대북 5대 제안 정리 표

문 대통령이 새해 들어 비핵화보다 남북 관계에 무게를 둔 것은 북한이 '한국 패싱'을 하는 데 대한 대응 차원이라고 청와대 측은 전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북·미 대화와 보조를 맞추다 보니 남북 정상회담 등을 통해 약속했던 남북 관계가 진전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미국 눈치를 너무 봤다는 것이다. 작년 말 청와대 및 안보 부처에서도 '동맹 우선'과 '남북 우선' 노선이 충돌했지만, 결국 '민족 우선' 노선이 승리한 것으로 분석된다.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도 "남북 관계에서 운신 폭을 넓히겠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올해는 일을 벌이겠다는 뜻으로 해석했다"고 말했다. 그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작년 미국이 남북 관계 개선을 견제했는데 문재인 대통령도 이를 참고 참았다"고 했다. 올해는 미국과의 불화를 감수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북·미 대화의 중요성을 인지 못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1/08/202001080026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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